‘검사독재 심판’이 선거 구호로 등장했습니다. ‘정치검찰해체당’도 창당 절차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검찰개혁이 논의된 지 20년도 넘었는데 여전히 검사독재를 심판해야 하고 정치검찰을 해체해야 하는 세상이라니 기가 막힙니다. 검찰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던 정권이 도합 10년을 집권했는데도,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셈입니다.

검찰개혁이라고 하면 보통 검찰이라는 집단에 대한 인적 쇄신 또는 수사권 조정 등 수사 관련 법정책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온갖 문제가 수사 대상이 되는 현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한국의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은 늘 ‘형사사건화’되어왔습니다.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붕괴, 광우병 사건과 세월호 사건, 황우석 사건과 국정농단 사건, 사법농단 사건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수사 대상이 돼 검찰이 문제 해결의 키를 쥐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나선 사교육과 건설 카르텔 척결, 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나 인사 문제도 역시 검찰과 경찰이 나섰습니다. 심지어 잼버리 파행이나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응급 헬기 이송도 여지없이 수사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아시안컵축구대회 결승 진출 실패도 수사한다고 나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일들은 지극히 ‘합법적’입니다. 언급한 주요 문제들이 형사사건화되는 법적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2017년 현재 우리나라 법률 가운데 (형법이나 형사특별법을 제외하고도) 3분의 2가량이 형벌 조항을 담고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김두얼·김원종, 2019). 1천개 넘는 법률의 형벌 조항을 근거로 고소와 고발, 그에 따른 수사가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어떤 분야의 문제도 1천개 넘는 법률의 촘촘한 그물망을 쉬 빠져나가기는 어렵습니다. 불기소로 마무리되거나 무죄 판결이 나와도 문제입니다. 당사자들은 수사 대상이 된 것만으로 큰 압박을 받으며, 수사가 시작되면 다른 문제 해결 수단은 급격히 위축되고 수사 결과만 넋 놓고 기다리게 되곤 합니다.

이 수많은 형벌 조항이 법과 원칙에 따라 일관되게 작동하는 것도 아닙니다.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개입된 고소, 고발, 수사에 의해 사문화됐던 조항이 발굴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찍어놓고 처벌 가능한 조항을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무줄처럼 늘려 쓸 수 있는 조항들도 문제입니다. 어떤 법을 찾아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적용할지는 수사기관의 광범위한 재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량이 많은 곳에는 ‘정치’가 슬슬 똬리 틉니다.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사건 처리가 이뤄졌다고 해도, 그 결과를 두고 정치적 해석이 끊이지 않습니다. 서초동에서는 1년 내내 ‘정치검사 물러나라’ ‘정치판사 물러나라’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지 않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양심적인 ‘사람’이나 다른 ‘조직’이 수사를 맡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결국 형사사건의 총량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먼저 수많은 법에 산재한 형사처벌 조항을 적절한 수준으로 줄여야 합니다. 윤리나 도덕 등 법이 아닌 사회적 기제에 맡겨야 할 문제,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 조직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 민사·행정 등 다른 법적 규율이 적용되어야 할 문제들이 손쉽게 수사 대상이 되지 않도록 법제를 손질해야 합니다. “형벌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라는 대원칙을 교과서에나 나오는 전설로 남겨둬서는 안 됩니다.

광범위한 형사사건화를 가능하게 하는 몇몇 죄목도 문제입니다.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라는 문구로 세상만사에 개입할 수 있는 업무방해죄, 언론 자유가 쉽사리 수사기관의 몫으로 넘어가도록 하는 명예훼손죄도 손볼 때가 되었습니다. 사교육 문제를 수사로 접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무줄처럼 늘려 쓸 수 있는 업무방해죄와 표시광고법의 벌칙 조항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짜뉴스를 잡는다고 언론을 압수수색한 배경에는 명예훼손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과잉 형사입법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지 않았습니다. 입법안 발의로 이어진 적도 있지만 언제나 다른 의제들에 묻혀 빛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21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사이 무슨 일만 터지면 강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과 정치권의 움직임 속에서 형사처벌 총량을 늘리는 입법은 늘어만 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검사독재를 심판하고 수사권을 검찰에서 다른 기관으로 이전시켜봤자 얼마나 효과적인 개혁 방안이 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상만사를 형사사건화하는 굳은 바위에 계란이라도 던져 보겠다는 후보가 있다면, 기꺼이 한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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