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인간만의 특권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웃음이 사라진 시대 같아요.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코미디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고 느끼죠.”

코미디언 김학래는 지난달 한국방송코미디언협회(이하 코미디언협회)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그는 취임사에서 “앞으로 코미디언들이 즐거울 수 있게 일자리 창출, 복지과 힘쓰겠다”라고 취임사를 밝혔지만 과거에 비해 코미디언의 무대가 줄어들었기에 회장 김학래의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습니다. 김학래를 지난달 30일 그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만났습니다. 

코미디언협회는 코미디언들의 친목과 권익을 위해 힘써온 단체로 2010년 2월부터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소속 회원들에게 별도로 회비를 받지 않고 자발적인 기부와 봉사로 유지되어왔습니다. 코미디계 대부인 엄영수 전 회장이 협회가 공식 출범하기 10년전인 2000년부터 약 23년간 이끌어오다가 지난달 22일부터 김학래가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코미디계 전체의 발전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김학래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다 없어지고 지금 겨우 ‘개그콘서트’ 하나 남았는데 그걸로는 부족하다. 지자체 행사나 공연 등이 활성화되고 코미디언들이 그곳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의 말처럼 지난 10여 년 사이 코미디계는 유례없는 침체를 겪었습니다. 현재 코미디언협회에 소속된 코미디언들은 1000여 명입니다. 그러나 이들 중 실제 방송활동을 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MBC ‘코미디의 길’, SBS ‘웃찾사’, tvN ‘코미디빅리그’ 등 유명 TV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폐지되면서 코미디언들이 설 수 있는 무대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KBS 2TV ‘개그콘서트’가 지난해 11월 3년 만에 부활했지만 예전 같은 위상은 아직 되찾지 못했습니다. 이미 유튜브 등 새로운 매체에 익숙해진 대중의 관심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개그콘서트’는 현재 평균 3~4%대 시청률을 기록 중입니다.

어려운 코미디계 현실에서 김학래는 선후배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코미디 프로 시청률이 40~50%가 될 정도로 전성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로 세월이 지나면 자리를 비워줘야 할 때도 있다. 대중의 요구에 따라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때라는 지적에 공감한다”라며 “코미디언협회에서도 코미디언들의 소식을 전하는 유튜브나 라이브 방송을 만들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다만 김학래는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면서도 씁쓸함을 숨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웃을 수 있고 유머는 인간의 특권이다. 그런데 코미디 프로가 없다는 건 그 특권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라고 토로했습니다. 과거 코미디 프로그램은 세대와 계층을 초월해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힘이 있었다며 아쉬워했습니다.

이어 김학래는 넷플릭스에서 선보인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 로얄’에서 문제가 된 ‘원숭이 교미’ 콩트 논란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코미디를 했을 때 상대편이 유쾌하지 않고 눈살 찌푸리면 유머로서의 가치는 없어진다. 영향력이 큰 미디어일수록 위험수위를 더욱 조심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김학래는 시대와 환경이 변한 만큼 코미디 프로그램도 그 변화를 받아들어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코미디 프로 제작을 기피하는 현 방송가 분위기의 변화, 코미디 프로를 전문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인력 양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누군가가 유머를 던졌을 때 이 소재가 재미있나 재미없나라는 판단을 제작진이 해야 해요. 그 노하우가 필요해요. 그런 경험이 없거나 적은 제작진은 코미디언들이 소재를 갖다 줘도 재미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몰라요. 그러니까, 코미디 프로그램은 그 분야에서 오랜시간 고민해 온 전문 PD와 작가들이 오래오래 담당해야 해요. 그렇게 되기 위해선 노하우를 쌓을 프로그램이 필요하구요. 단기적인 성과에만 급급하면 그런 인력을 양성할 수가 없어요.”

김학래는 ‘개그콘서트‘ 외에 더 많은 코미디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길 바란다는 소망을 드러냈습니다. 코미디를 향한 열정만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낸 선후배 동료들에게 고맙다는 그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가장 큰 매력은 공개방송이란 것이다. 즉각즉각 관객의 반응을 느낄 수 있다. 오로지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열기와 희열을 잊지 않길 바란다”라고 당부했습니다.

김학래는 1977년 KBS 특채 개그맨으로 발탁돼 데뷔했습니다. KBS ‘유머 1번지’, ‘쇼 비디오 쟈키’ 등 다수의 코미디 프로에 출연하며 1980년대~1990년대 최고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김학래의 부인 임미숙도 1984년 제2회 KBS 개그 콘테스트로 데뷔한 코미디언으로 두 사람은 ‘대한민국 대표 코미디언 부부’로 불렸습니다. 김학래와 임미숙은 현재 중식 레스트랑인 ‘차이나린찐’, 유튜브 채널 ‘김학래 임미숙의 웃짜 채날’을 함께 운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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