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한국의 참사 기억법, 추모 공간은 지금

설날을 앞두고 경북 문경시의 육가공품 공장 화재 현장에서 고립됐던 소방관 2명이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비극적 사고는 해마다 끊이지 않습니다. 와우아파트 붕괴(1980), 성수대교 붕괴(1994), 삼풍백화점 붕괴(1995), 대구 지하철 화재(2003), 용산 참사(2009), 우면산 산사태(2011), 세월호 사고(2014),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2022), 이태원 압사 사고(2022), 오송 지하차도 침수(2023) 등 사회적 참사는 이어져 왔습니다.

재난과 참사는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피해 복구와 지원의 중요성, 국가의 안전 시스템을 돌아보게 합니다. 참사를 경험한 생존자, 유족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참사가 잊혀진다고 말합니다. 또 한 해가 밝았습니다. 우리는 지난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 꼭꼭 숨은 추모 공간…잊힌 참사의 기억 ☢
1994년 10월 21일 32명의 희생자를 낸 성수대교 붕괴 참사 위령비는 도시고속도로(강변북로) 사이 외딴 섬 같은 공간에 마련돼 있습니다. 도보로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습니다. 지난 1일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비’ 주차장을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도착한 곳은 성수동 한강사업본부였습니다. 본부 관계자는 “차로만 갈 수 있다. 고속화도로를 지나야 해 위험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먼저 휴대전화 지도를 따라 위령비 근처까지 오솔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가로막힌 철조망 뒤로 차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 길을 자주 산책한다는 한 어르신은 “성수대교 사고는 알지만, 위령비는 본 적 없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를 통해 도보 접근이 가능한 길을 찾았지만, 차들이 빠르게 지나는 터널을 지나 자동차 전용 도로를 걸어야 했습니다. 그마저 터널의 좁은 도보 구역은 녹색 철문으로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는 “강변북로가 연결돼 있어 위험하다는 판단에 막았다”라며 “제가 알기론 위령비에 걸어 갈 수 있는 길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차량을 이용해 강변북로 도로와 도로 사이에 마련된 주차장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기자가 이날 확인한 위령비 주차장 입구는 화분들로 막혀 있었습니다.

1995년 6월 29일 502명의 목숨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추모하는 삼풍참사위령탑도 외롭게 서 있긴 마찬가지입니다. 위령탑은 참사 현장과는 6㎞가량 떨어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시민의 숲에 마련돼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엔 주상복합건물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참사 직후 삼풍백화점 자치에 추모공원을 조성하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비싼 땅값과 주민 반대에 막혀 참사와 아무 관계 없는 이곳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삼풍참사위령탑은 서초구 시민의 숲 남측 2구역 가장 끝자락에 있었습니다. 공원 중앙에 위치한 미얀마 대한항공 858기 희생자위령탑 뒤편,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서 있는 삼풍참사위령탑이 보였습니다. 조화만이 덩그러니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윤봉길기념관과 운동시설 등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던 1구역과는 대비되는 풍경입니다. 삼풍참사위령탑 앞 안내문 글귀는 세월에 상당 부분 지워져 ‘삼풍참사위령탑을 잊지 않고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내용만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또 2011년 7월 우면산 산사태로 목숨을 잃은 15명의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하는 ‘일상의 추념’ 위로비도 우면산이 아닌 서초구 시민의 숲에 있습니다.

1970년 4월 8일 3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도 시민에게 잊혔습니다. 참사 현장에는 와우공원이 들어섰고, 공원 입구 계단에 당시 희생자를 추모하는 동판이 설치됐습니다. 하지만 크기가 작고 계단 손잡이에 가려져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지난 2일 현장을 찾은 기자도 이 계단을 몇 번을 지나쳤지만, 동판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아챘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한 주민은 “오래전 이미 잊힌 사고”라며 덤덤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 “결코 잊혀서는 안 된다”, 참사 경각심 되새겨야 ☢

시간은 흐르고 그날의 아픈 감정과 기억은 흐려집니다. 하지만 희생자 유가족, 참사를 목도한 이들의 시간은 참사 당일에 멈춰 있습니다. 2009년 1월 20일 재개발에 반발하던 철거민 등이 망루 농성을 벌이던 중 경찰 진압 과정에서 불이 나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숨진 용산 참사 현장에 있던 김모 씨의 기억도 그대로입니다.

김 씨는 “숨진 철거민들의 얼굴, 함께 한 대화, 남일당 불길이 아직도 생각난다”라며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고 울먹였습니다. 이어 “수억씩 대출받아 가게를 열었는데 재개발이 결정되고 나오는 보상금은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었다. 누가 그냥 나올 수 있었겠나. 이전만 해도 평범한 시민이었던 사람들이 그렇게 남일당 건물 망루에 올라 세상을 떠났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고 잊어서도 안 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생존자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2019년 용산 참사 당시 망루 농상에 올랐던 철거민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참사가 난 남일당 건물이 있던 자리에는 43층 주상복합건물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참사의 흔적은 이곳 어디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용산 참사 추모비는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있습니다.

시민들은 참사 추모 공간 조성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참사에 대한 경각심을 되새겨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와우공원 인근 학교에 재학 중인 중학생 김태호(가명·15)·권현준(가명·17)군은 “추모 동판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 유가족이 더 슬플 것 같다”라며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겨야 시민들도 추모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비 인근에서 만난 시민 A 씨는 “도로 사이에 위령비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라며 추모를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어 위령비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아무도 찾지 않은 삼풍참사위령탑에는 이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뜻하지 않는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위로하고, 다시는 이 땅 위에 그런 가슴 아픈 탈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고자 위령탑을 세웠다.’

★ 2. 사고 현장 추모 난관, 슬픔 치유 고민해야

2022년 10월 29일 친구들과 핼러윈 이태원 구경을 나선 아들은 그곳에서 친구 2명을 잃고 혼자 돌아왔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159명 희생자 중 마지막 희생자인 이(당시 16세)군은 참사 43일 후 스스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참사가 일어난 지 450일이 지났지만, 유족의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전히 추모할 수 있는 공간도 아직입니다.

이군 어머니 송해진 씨는 “추모 공간은 시민들이 참사를 상기하는 물리적 매개체가 될 수 있다”라며 “추모 공간을 정비하고 보수하려면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법이나 규정이 없다면 임시 공간에 불과하다. 단발성으로 (추모하고) 없어질 공간이 아니라 계속 공간이 유지되려면 이 같은 것들이 뒷받침돼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희생자를 낳은 사회적 참사는 한국 사회에서 끊이지 않았지만, 기억을 위해 마련된 공간은 많지 않습니다. 영구적인 추모 공간 마련까지 가는 길은 가시밭길입니다. 지방에 유일하게 남은 전북 전주시의 이태원 분향소는 지난해 11월 지자체로부터 철거 요청을 받았습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2월 서울광장에 무단 설치된 이태원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유족 등의 반발에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 신림역 4번 출구 근처에 마련된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 추모 공간은 지난해 7월 28일 자취를 감췄습니다. 상권이 침체와 취객 행패 등의 이유로 상인회 측에서 현장 정리에 나선 것입니다.

어렵게 추모 공간이 만들어져도 존재 자체마저 잘 알려지지 않아 잊혀버린 십상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성수대교 붕괴 참사 위령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위령탑,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 추모 동판 등 참사 현장과 동떨어져 있거나, 접근 자체가 어려워 시민들에게 잊힌 현실을 꼬집었습니다.

해외에서 대규모 참사를 추모하는 방식은 우리와 사뭇 다릅니다. 추모 공간을 두고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겪는 한국과 달리 참사 현장을 온전히 추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지난 2001년 9·11 테러 발생 이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자리는 그대로 추모 공간이 됐습니다. 붕괴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에는 2개의 인조 연못이 마련됐습니다. 연못 주변으로 둘러싸여 있는 추모비에는 희생된 2799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깊이 9m의 인공 폭포로는 애도의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참사 발생 후 일상 회복을 위해 추모 공간을 축소하거나 현장을 정리하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그러나 추모 공간은 유족만을 위한 곳이 아닙니다. 시민들도 국가적 참사를 기억하고 공유하면서 슬픔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일각에선 참사가 주는 사회적 메시지를 기억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추모 공간 필요성과 함께 추모 방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는 “추모 공간은 사회적 참사에 대한 집합적 기억을 공유하는 의미가 있다”라며 “집단마다 추모 공간 조성을 바라보는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어떤 참사에 어떤 추모 공간을 만들 것인지는 정치적, 사회적인 합의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과)도 “관련 법률상 추모 공간 관리나 조성은 지자체 권한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강제하기는 쉽지 않다”라며 “정치적으로나 당파적으로 추모 공간을 인식하는 경우도 있고, 조사 기구 구성도 어려운 상황인 만큼 추모 방법에 대해서 합의가 어려울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중앙정부나 지자체 등에서 국민 기대와 인식에 맞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추모 공간) 표준 규정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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