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다음 정복지는 영상 분야입니다. 간단한 문장 하나로 사진을 만드는 ‘텍스트 투 이미지’ AI에 이어 문장 하나로 영상을 만드는 ‘텍스트 투 비디오’가 곧 나올 태세입니다. 오픈 AI는 지난 2월 ‘소라’라는 이름의 서비스를 공개했습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선보인 영상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사람이 컴퓨터로 작업하면 수개월이 걸릴 결과물을 한 줄짜리 문장으로 AI가 ‘뚝딱’ 만들어냈습니다. 가장 화제가 됐던 도쿄 거리를 걷는 여성의 동영상은 ‘한 세련된 여성이 따뜻하게 빛나는 네온과 생동감 넘치는 도시 간판으로 가득한 도쿄 거리를 걷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에 ‘그녀는 검은색 가죽 재킷, 긴 빨간색 드레스, 검은색 부츠를 신고 검은색 지갑을 들고 있다. 선글라스와 빨간 립스틱을 착용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 있고 자연스럽게 걷는다. 길은 축축하고 반사되어 화려한 조명이 거울 효과를 만들어 낸다. 많은 보행자가 걸어 다닌다’라는 자세한 ‘디테일’을 추가했습니다. 복잡한 동영상 제작 프로그램을 공부하지 않아도 고품질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열린 셈입니다. 구글도 지난 1월 비슷한 서비스인 ‘르미에르’를 공개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AI 서비스를 주도하는 두 회사가 비슷한 시기에 AI로 비디오를 만드는 서비스를 공개했다는 건 올해 AI가 가는 방향이 어디라는 걸 명확히 보여줍니다.

AI의 부상으로 영화, 드라마 등 영상 관련 시장은 스마트폰이나 유튜브 같은 새로운 매체 등장 이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촬영이나 배우 같은 기본적인 요소가 아예 배제되는 시대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일 당장 모든 게 뒤집히진 않을 것입니다. 아직 AI는 그만큼 정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SF 작가 테드 창은 지난해 뉴요커 기고문에서 챗GPT에 대해 ‘열화된 복제본’이라며 ‘흐릿한 jpg 파일’ 같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큰 그림은 압도적이지만, 디테일을 들여다보면 아직은 부족한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업무상 챗GPT 유료판을 쓰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것도 되는구나’ 하는 감탄과 동시에 ‘아직은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구나’ 하는 실망감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가능성이 실현되는 시간이 머지않았다는 쪽에 손을 들고 싶습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살인자ㅇ난감’에는 형사 장난감(손석구)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아역이 등장합니다. 손석구와 똑 닮은 배우라고 화제를 모았는데, 알고 보니 AI를 활용한 딥페이크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닮은 아역배우를 캐스팅해 촬영한 후 AI로 후보정했습니다. JTBC 토일 드라마 ‘웰컴 투 삼달리’에도 故 송해가 딥페이크 기술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주목할 건 딥페이크 기술에 대한 대중의 반응입니다. 대부분 호의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딥페이크에 대해 거부감이나 불편함을 호소하진 않습니다. 소위 인간과 닮을수록 불편함을 느낀다는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선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렇게 하나둘 영화나 드라마에 자연스레 AI 기술이 스며들다 보면 배우의 자리까지 AI가 대체하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제작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제작사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요즘 드라마 편당 제작비가 10억원을 훌쩍 넘는다고 합니다. 주연배우 회당 출연료가 10억원을 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배우로 인한 리스크는 점점 커집니다. 지난해 배우 유아인과 고 이선균이 촬영을 마치고 개봉하지 못한 작품의 제작비는 모두 합쳐 900억원에 달합니다. 늘어나는 비용과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고, 기술은 요긴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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