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도 KBS의 흉흉한 칼바람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11일 KBS 1TV ‘역사적인 그날’ 455회 방송 말미 숙연한 분위기 속에 종방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날 방송을 끝으로 ‘역사적인 그날’이 잠시 휴식기를 갖고 새 단장해 돌아오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작진은 “‘역사적인 그날’이 지난 2013년 10월 26일 첫 방송을 시작해 PD 55명, 작가 56명, 패널 75명이 거쳐갔다”라고 되돌아봤습니다. 역사 강사 최태성은 “이렇게 분장을 받은지 10년이 흘렀다. 앞으로도 새로운 버전의 ‘역사적인 그날’을 기대한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패널로 출연했던 배우 이시원은 “역사를 뜨겁게 사랑할 기회를 주셔서 행복했다”라고 했고, 허준은 “사명감 같은게 생겼다”라고 말했습니다. 연구진이었던 이익주 교수는 “여러 역사 프로그램 가운데 역사 왜곡을 가장 안 하려고 노력하는, 역사 왜곡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프로그램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연구자로 애정을 갖고 함께 해 왔다.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기 마련이다. 잠시 쉬고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시작되길 바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MC인 최원정 아나운서는 “언젠가 오겠지 했는데 끝인사를 하는 날이 오늘”이라며 남다른 소회를 털어놨습니다. 최 아나운서는 “2013년부터 10여 년 마주한 455번의 메시지, 그리고 역사의 무게”라고 말을 이어가다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였고, 끝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그 무게,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면서 조만간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여러분 앞에 서겠다”라고 다짐했습니다.

‘역사저널 그날’은 우리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가 바뀐 결정적인 하루 ‘그날’ 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프로그램입니다. 지난 10년간 KBS 간판 시사 교양 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지난 방송까지만 하더라도 종방에 대한 예고가 없었기에 갑작스러운 종방에 시청자들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역사적인 그날’은 시즌제로 편성되는 방송입니다. 지난 2016년 종방했다 이듬해 6월 새 시즌을 시작한 바 있고, 이후에도 한 차례 시즌 종방 후 2018년 9월 시즌 3를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당시엔 홈페이지에 시즌 종영에 대한 안내를 했으나 이번엔 그 같은 내용이 없습니다.

지난해 11월 KBS 박민 사장은 취임 첫날 교양 프로그램 시청률 1위였던 ‘더 라이브’를 갑작스레 편성에서 빼고, ‘뉴스 9’ 등 주요 뉴스 앵커도 시청자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짧은 시간 KBS가 보인 행보는 방송사 구성원인 제작진을 무시하고 편성 규약을 어기며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무너뜨린 처사입니다. KBS에서 이 같은 일이 이어질 수록 ‘낙하산’ 수식어를 붙인 박민 사장이 공영방송을 점령하고 좌지우지 하려 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지난달 KBS 2TV 예능 ‘홍김동전’, ‘옥탑방의 문제아들’이 시청률을 이유로 연달아 갑작스레 폐지된 만큼 ‘역사적인 그날’ 역시 이와 같은 맥락으로 박민 신임 사장의 흉흉한 인사 콘텐츠 칼바람을 피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두고 일어난 ‘역사저널 그날’의 갑작스런 종방에 갑론을박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달 KBS 반 민주노총 KBS 노동조합 측은 “‘역사저널 그날’ 작가와 진행자 변경을 두고 일부 피디가 제작 자율성을 내세워 상부의 인사 조처에 반발했다”라면서 “리뉴얼을 위해 3개월간 제작이 중단된다”라고 밝혔습니다.

2020년 4월 15일 21대 총선을 앞두고 ‘역사저널 그날’이 민감한 근현대사 아이템을 다루면서 편향된 관점을 보였다는 게 노조의 판단입니다.

노조는 “수신료 분리 징수라는 최악 상황의 근본 원인은 ‘불법파업과 편파방송’이었다”라면서 “제작 거부와 불법파업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과 관행을 정비하는 것이 근본적인 위기 극복 방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유느님도 피하지 못한 급작스러운 프로그램 폐지의 아픔입니다. 심지어 당일, 녹화 끝나고 집에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통보를 받았답니다.

2월 7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 230회 '환상의 짝꿍' 특집에는 유재석의 20년 찐친 김원희가 게스트로 출연했습니다.

유재석, 김원희, 조세호는 '놀러와'에서 8년을 함께한 사이로, 평소 남다른 찐친 케미를 자랑해왔습니다.

MBC의 8년 장수 예능 '놀러와'는 2012년 12월 24일 돌연 종영을 맞이했던 바입니다. 이에 유재석이 '놀러와' 종영 당시 당황스러웠던 심경을 뒤늦게 고백했습니다.

유재석은 "'놀러와' 얘기를 나영 씨 나올 때도 하고 원희 씨 나와 하게 되는데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프로그램 마무리 된 게 저도 당황스럽긴 했다"라며 "녹화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엘리베이터에서 PD님이 '오늘 녹화가 마지막이었다'라고 하셨다. 저희뿐 아니라 PD님도 그때 많이 울었다. 펑펑 울었다"라고 떠올렸습니다.

이에 김원희는 "우리가 뭐 인사할 덴 없다. 스태프끼리 만나면 되는데 8~9년 사랑해주신 시청자 여러분에게 제대로 인사 못한 게 (아쉬웠다)"라며 "그래서 우리 회식하고 사진 올렸잖나"라며 추억을 회상했습니다.

당시 제작진은 방송 말미 '지난 8년간 '놀러와'를 사랑해주신 시청자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자막으로 프로그램 폐지를 알려렸고, 이후 '2021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PD상을 수상한 유재석은 "김원희 씨, 방송 볼지 모르겠지만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상 받아서 미안하다. 그동안 수고했고 8년 동안 함께 해서 감사하다"라고 뒤늦은 인사를 전한 바 있습니다.

한편 김원희는 조세호를 보더니 "매주 너무 열심히 해서 안타까울 정도였다. 다방면으로 잘하더라. 내가 잘 될 거라고 하지 않았나. 이제 나만 잘 되면 된다"라며 반가워했습니다.

이가운데 "때론 부담스러운 프로그램도 있지 않냐"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조세호는 "'유퀴즈'가 좀 힘들었다. 9시부터 6시까지 걸어 다녀서 촬영 전날 두려웠다. 시청률이 많이 안 나와서 역 앞에서 석고대죄를 한 적도 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또 유재석은 "요즘 방송국 관계자분들 기다려주지 않는다. 인내하고 버텨주신 tvN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린다"라고 인사했습니다.

“새 수뇌부가 시작부터 너무 선을 넘는다!”, “9시 뉴스는 사장의 스케치북이 아니다!”, “사장 취임 첫 주가 다 지나지 않았는데 회사는 전에 없는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박민 사장이 취임하고 약 일주일이 지난 현재, KBS 내부는 새 사장과 간부들에 대한 구성원의 질타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박 사장은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한 방송법 제4조를 위반한 혐의를 받는 피고발인 신세가 됐습니다.

‘혼란’, ‘점령’. KBS 구성원이 지금껏 나온 여러 성명에 이런 표현을 쓰는 건 사장 임명 직후부터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 때문입니다. 임명장을 받지 않은 본부장 내정자들 지시로 메인뉴스 앵커를 비롯해 주요 뉴스·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고별인사도 없이 물러나고, 제작진들과의 협의 없이 시사 프로그램이 당일 결방되고 폐지된 일입니다. 그리고 사장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불공정 편파보도”라며 콕 집어낸 보도 4건이 보도국 구성원 협의나 검증, 반론도 없이 당일 ‘뉴스 9’ 앵커 브리핑에서 그대로 열거된 사례입니다. 모두 박 사장 취임 이틀 만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우선 지난 14일 방송된 뉴스 9 앵커 리포트에 대해 “사장의 뉴스 개입, 뉴스 사유화”라는 보도본부 구성원의 반발이 나옵니다. 이날 박장범 뉴스 9 앵커는 <보도 공정성 훼손 대표적인 사례들은?> 앵커 브리핑에서 “정치적 중립이 의심되고 사실 확인의 원칙을 충실하게 지키지 않는 보도가 나오지 않도록 시청자들께 약속하겠다”라며 박 사장이 “불공정 편파 보도”로 꼽은 보도 4건을 열거했습니다. KBS 기자협회가 방송 전 ‘해당 기사에 오류나 문제점이 있는지 일체 확인 절차가 없다는 점’ 등의 기자들 우려를 전달했지만 무시됐습니다.

그러자 다음날 KBS 38기 기자들은 연명 성명을 내어 “과연 어떤 부분이 정파적이었고 그 근거는 무엇이며 판단기준은 어떻게 되는지 묻고 싶다. ‘대국민 사과’를 할 정도라면, 새로운 수뇌부가 보도본부 구성원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KBS 기자협회는 앵커 브리핑 관련한 기자들 비판 의견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기자가 정파적 이익을 위해 고의로 오보 냈다’라는 여권의 주장을 우리 회사가 인정하는 건데, 아무리 간부들이 교체됐어도 자사 기자를 이런 식으로 매도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등의 우려가 담겼습니다. 지난 16일 KBS 기자협회는 “뉴스 9 시작 불과 몇 시간을 앞두고 큐시트에 등장한 4분여의 보도는 심지어 누가 썼는지도 모른다. 업무 프로세스와 관행을 한참이나 뛰어넘었다”라며 보도본부 책임자들의 설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일방 하차 통보, 프로그램 결방·폐지 사태를 일으킨 라디오센터장, 편성본부장 등 간부들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앞서 ‘주진우 라이브’ ‘최강 시사’ 진행자 하차와 대체 프로그램 편성을 지시한 라디오센터장에 대해 KBS PD협회 라디오구역 PD 76명은 “동료와 후배들에 대한 일말의 예의와 상식조차 포기한 김병진 센터장은 이미 라디오 조직 수장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라며 “권한 없는 무자격 신분으로 업무 지시를 했을 뿐 아니라 모든 절차를 무시한 채 프로그램을 바꿈으로써 KBS 방송 편성규약을 명백히 위반했다”라고 질타했습니다.

프로그램 방영 당일 편성 취소 통보에 이어 프로그램 폐지 결정을 받은 ‘더 라이브’ 제작진은 지난 17일 성명을 발표해 “편성본부장은 작금의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 편성본부장이 편성규약도 위반하는 것을 막지 못한 주변의 국장들도 함께 자리를 정리하라”라고 촉구했습니다.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는 사장 취임 이후 일어난 이런 일들이 모두 방송법, 편성규약, 단체협약 등을 위반한 사안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KBS 본부는 21일 박민 사장 등을 방송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고발과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습니다.

KBS의 혼란은 더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본부장·부장 인사에 이어 팀장급까지 인사 발령이 났지만, 임명동의제가 필요한 5개 국장(통합뉴스룸 국장, 시사제작국장, 시사교양1·2국장, 라디오제작국장) 자리는 공석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강성원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지난 20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내년 3월 단협 종료까지 사측이 아예 이 자체를 공석으로 계속 가지고 가는 등의 임명동의제 무력화 시도들이 나올 거라고 보고 있다”라며 “공정방송 실천을 위해선 임명동의제가 언론사 종사자들에게 중요한 근로 조건이라는 게 이미 판시로 나와 있기 때문에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면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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