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수신료 분리징수 논란이 한창입니다. 현재의 찬반 구도에서 한 발 비켜서서, 인천·경기 지역 주민 관점에서 그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지난 6월 5일 인천에서는 '인천 방송주권찾기 범시민운동본부'가 발족했습니다.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인천 YMCA, 인천 YWCA 등 22개 시민·사회 단체가 참여했습니다.

인천 방송주권찾기 범시민운동은 갑작스레 조직된 것이 아닙니다. 그 전신인 인천주권찾기조직위원회는 2년 여 전부터 방송 주권 찾기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방송 주권'이란 말이 생소할 텐데, 쉽게 설명하면 공공 재원으로 운영하는 KBS가 타 지역과 비교할 때 '인천 소식'을 턱없이 부족하게 다룬다는 문제 의식에서 나왔습니다. 수년 전 KBS는 전국 9개 도시의 방송총국을 중심으로 뉴스 제작·편성을 늘리는 지역화 방안을 추진했는데 인천 지역이 배제된 것에 대한 불만이 시민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인천의 방송 주권 찾기 운동은 수신료 분리징수를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수신료의 가치를 '지역성 구현'으로 보여달라는 입장을 수년 째 견지하고 있습니다.

인천이 아닌 타 지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수치를 조금 길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먼저 인천 방송주권찾기 범시민운동본부가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실에서 받은 'KBS 지역별(사업지사) 수신료 수입 현황'을 보면 2021년 기준 인천은 594억 8000만 원으로 서울(1160억 6600만 원), 경기(1451억 6300만 원) 다음으로 높습니다. KBS는 부산·창원·대구·광주·전주·대전·청주·춘천·제주 등 9개 지역에 방송총국을 두고 있지만 인천·경기 지역은 총국보다 규모가 작은 수원의 경인방송센터(경인취재센터)가 담당합니다. KBS 본사(서울) 보도본부 통합뉴스룸 소속의 소수 인력이 인천 300만 명, 경기 1360만 명이 거주하는 방대한 지역을 취재 권역으로 삼습니다.

인천 방송주권찾기 범시민운동본부에 따르면 KBS가 매주 평일 저녁 7시~7시 40분(40분간) 방영하는 '뉴스 7 인천·경기' 지역 뉴스 분량은 10분, 그 중 인천은 4분에 불과합니다. 반면 방송총국을 둔 9개 지역에서는 뉴스 7이 방영되는 40분 전체를 자체 제작·편성합니다. 인천 방송주권찾기 범시민운동본부가 “잃어버린 인천 뉴스 40분을 찾자!”라는 구호를 외치는 배경에는 이렇듯 공영방송 KBS로부터 소외된 인천·경기 지역의 현실이 놓여 있습니다.

KBS 경인방송센터 설립과 그 이후 과정을 복기하면서 인천·경기 지역 방송주권 운동이 경계해야 할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입김을 최소화 한 시민 주도의 방송주권 확보 운동이 이뤄져야 합니다.

KBS 경인방송센터가 개국한 13년 전인 2010년 9월 16일입니다.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경기도와 한나라당(국민의힘) 경기도당 간 정책협의회에서 당시 김문수 지사가 경기도당위원장인 심재철 의원(안양시 동안구 을)에게 '보도 개입'을 시사하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KBS·MBC 경인지국이 개국해 의원님 활동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합니다. 아직은 기자가 많지 않기에 구체적으로 중요한 뉴스가 된다든지 하는 부분이 있으시면 (경기)도에 연락해 주세요. 보도가 되도록 최선의 지원을 다하겠습니다.”

앞서 KBS 경인방송센터 개국식에 온 박지원 당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축사에서 “9시 뉴스에 경인지역 뉴스를 보도하는데 민주당 시장 출신 시장에 대해 6분씩은 비춰주길 바란다. 그러면 수신료(인상)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농담조로 던진 말일 수 있지만, '정치가 방송에 개입할 수 있다'라는 것을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서울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치인은 지역 방송 강화라는 의제를 '정치적 입김'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여지가 늘 존재합니다.

또 KBS가 경인방송센터를 설립할 때 1단계로 뉴스 보도를, 2단계로 시사·정보·문화 프로그램 편성 확대를 약속했지만 제대로 지키지 못한 원인을 파악하는 일이 선행돼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인천·경기 지역 주민 상당수는 지역 뉴스(콘텐츠)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이유를 내세웁니다. 직장을 서울에 두고 출퇴근하는 인천·경기 주민을 지역민이 아닌 '서울 생활권'으로 묶어 파악하는 것인데 이는 수도권의 외곽지역을 여전히 서울에 베드타운으로만 인식하는, 수십 년 전 과거에 머물러 있는 시각입니다. 인구가 늘고, 부가 축적되고, 이해 관계가 충돌하는 인천·경기 지역은 오히려 이야깃거리가 차고 넘치는 지역입니다. KBS의 지역 전문 보도·제작 인력의 확충 없이 경인방송센터의 정상화 혹은 인천방송국 설립 요구는 이행하기 힘든 과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KBS가 얼마 전까지 경영적자 해소를 이유로 지역 방송국 통폐합을 시도했고, 공영방송 비대화를 반대하는 여론이 존재하고 있음을 감안해야 합니다.

TV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려는 정부 방침은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 후견주의를 심화하는 부당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KBS가 공영방송에 바라는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그에 대한 반응을 적극 내놓고 있지 않아 아쉽습니다.

당장 인천 방송주권찾기 범시민운동에 KBS는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인천에서 볼 때 KBS의 지역성 강화를 촉구하는 목소리에 큰 이견이 나오기 힘든 데 그 이유는 일상 생활에서 공영방송의 효능감을 느껴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KBS 창원방송총국은 최근 창원 한복판 팔룡산에 미군 공여지가 있고,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이곳에 비밀리에 사격장을 조성하기 위한 벌목 공사를 하는 사실을 연속 보도로 알리고 공사를 중단시키는 성과를 냈습니다. KBS 대구방송총국은 지난해 지역의 폐지 줍는 노인 실태를 GPS 추적장치를 통해 분석하고 공적가치를 확인하는 다큐멘터리와 리포트 그리고 디지털 기사를 연속으로 내보내 호평을 얻었습니다. 수신료의 가치로 '지역성'을 구현한 좋은 사례입니다. 앞으로도 KBS가 인천·경기 지역에도 지역 콘텐츠를 발굴, 보도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서울의 집중된 자원의 적절한 배분이 이뤄진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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