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대한민국이 비통함에 빠졌습니다. 지난 달 29일 서울특별시 이태원에서 일어난 압사 참사는 사망자의 수에, 피해자들이 서서 숨져간 그 방식에 그리고 대한민국의 가장 큰 도시 서울의 번화가에서 벌어진 참극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정부는 10월 31일부터 11월 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선포했고 사건이 벌어진 29일 이후 30일부터 방송된 수 많은 TV 프로그램은 결방 선언을 예고했습니다. 춤과 노래가 필요한 음악 프로그램이 대거 결방했고, 그 밖에도 웃음이 필요한 예능 프로그램이 대거 결방의 수순을 밟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참사가 일어나면 일제히 방송가는 결방 프로그램에 동참하는데요. 한편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그랬고, 2014년 세월호 침몰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심지어 2014년 세월호 침몰 참사 당시에는 지금은 폐지해서 아쉬운 지상파 3사 코미디 프로그램의 개그맨들이 상복을 연상하게 하는 검은 정장을 일제히 맞춰 입고 슬픈 표정으로 고인들의 명복을 빌기도 했습니다.
이번 이태원 압사 참사에서도 비슷했는데요. 지난 31일 방송됐던 대부분의 드라마가 결방했고, 이 시간에는 참사의 원인과 대책을 분석하는 토론 프로그램이 긴급 편성했습니다. 앞서 KBS는 '노래가 좋아', 'TV쇼 진품명품', '전국노래자랑', '중견만리', '동물의 왕국', '열린음악회', '이슈 픽 쌤과 함께', '시사멘터리 추적', '예썰의 전당', '아침마당', '일일연속극 내 눈에 콩깍지', '우리말 겨루기', '가요무대', '이웃집 찰스', '일꾼의 탄생', '1박 2일',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홍김동전', '재방송 프로그램 Zone', '이별도 리콜이 되나요?', '개는 훌륭하다',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3', '연중 플러스', '뮤직뱅크'의 결방을 예고했습니다. MBC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출발! 비디오 여행', '복면가왕', '물 건너온 아빠들', '구해줘! 홈즈', '국제뉴스 프로파일링-뜨거운 세계', '일일드라마 마녀의 게임', '안싸우면 다행이야',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 '호적메이트', '라디오 스타', '심야괴담회', '나 혼자 산다'의 결방을 예고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SBS도 'TV 동물농장', 'SBS 인기가요', '런닝맨', '싱포골드', '미운 우리 새끼', 'SBS 스페셜', 'SBS 네트워크 특선', 'SBS 월화드라마 치얼업', '동상이몽 2-너는 내 운명', '신발 벗고 돌싱포맨', '편먹고 공치리', '문화가중계'를 결방을 예고했고, '더 리슨:우리가 사랑한 목소리'의 첫방송을 연기했습니다. 이와 함께 JTBC의 '톡파원 25시', '최강야구', '두 번째 세계', '아는 형님', '디 엠파이어:법의 제국', TV조선 '국가가 부른다', '화요일은 밤이 좋아', EBS '자이언트 펭TV', 'EBS 스페이스 공감', '자이언트 펭TV 스페셜'이 방송을 잠깐만 올스톱했습니다.
각종 새로운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제작 발표회 또한 연기되거나 취소했습니다. 넷플릭스의 새 오리지널 시리즈 '더 패뷸러스'는 제작 발표회와 4일 공개 예정인 일정을 연기했습니다. 국가애도기간인 5일까지는 이러한 일정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고, 향후 방송에서도 과도한 예능적 요소는 지양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가 이러한 참사에 국가애도기간을 정해 국민적인 추모를 주도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를 논하기에 앞서 방송에 있어서 애도와 추모의 의미를 다르게 생각할 수는 없는지에 대한 의문도 생깁니다.
2009년 개봉한 호라티우 말라엘 감독의 '사일런트 웨딩'이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제목 그대로 '조용한 결혼식'이 주된 내용입니다. 1953년 소련의 영향력에 있던 루마니아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습니다. 주인공들의 결혼식날 스탈린이 죽고 소련군은 일주일을 애도기간으로 선포합니다. 하지만 먼 곳에서 온 친척들과 차린 음식으로 결혼식을 미룰 수 없게 된 가족들은 모두가 잠든 새벽에 비밀스럽게 결혼식을 엽니다. 박수도 칠 수 없고, 웃을 수도 없습니다. 노래를 부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소리 없이 웃고 떠들면서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물론 국가적인 참사가 일어났고 애도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애도의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드라마나 예능 역시 그러합니다. 비록 그 방식에서 있어서 웃음이 깃들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인 주제가 인간성의 회복이나 인간애에 대한 것이라면 과연 이러한 추모의 방식 역시 막아야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사회적인 주제에 대해 예능적인 접근을 하는 프로그램이 많은데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와 '당신이 혹하는 사이', JTBC '세계다크투어', tvN '벌거벗은 세계사' 등은 분명 재미를 추구하지만 다루는 사건들이 주는 사회적, 세계사적 의미를 분석해 의미도 전달합니다. 또한 지금은 유행이 조금 지났지만 각종 범죄의 경각심을 요구하는 이른바 '범죄 예능' 장르의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오히려 모두가 슬픔에 빠졌을 때 희망을 줄 수 있는 구성과 편집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정부의 국가애도기간 주도에 방송사들의 자기검열이 이어지면서 시청자들은 참사의 순간 어느새 애도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하곤 합니다.
우리나라의 장례 문화는 세계 어느 나라들도 그렇듯 망자를 외롭지 않게 하는 행동들이 주를 이룹니다. 노잣돈을 챙겨주는 행위도 그렇고, 빈소에서 웃고 떠드는 문화 역시 그렇습니다. 한국인들은 장례식장에서 비통해 울다가도 오랜만에 만난 조문객들과 인사를 나누며 웃기도 하다가 또 다른 손님을 만나 울기도 합니다. 그렇게 슬픔을 털어내고 주변의 위로를 느끼고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습니다.
TV가 참사를 대하는 방식은 지금처럼 납작 엎드리고, 드라마와 예능은 절대 안 된다는 원칙으로만 고수돼야 할까요? 물론 각자 애도의 방식은 지켜져야 합니다. 그에 따라 TV 역시 재미를 추구하더라도 충분히 의미를 줄 수 있는 구성으로 더욱 깊은 울림을 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환경은 애초에 그런 선택부터가 터부시 되는데요. 위에 설명한 영화 '사일런트 웨딩'의 주인공들처럼 슬픔과 침묵이 강제됩니다.
참사는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태원 압사 참사는 다시 한 번 사회적 참사가 주는 아픔을 대한민국 국민들의 머리와 마음속에 깊이 새긴 트라우마가 되고 말았습니다. TV는 과연 이러한 시점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함께 침묵하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그들만의 방식으로 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것이 좋을까요? 연이은 이태원 압사 참사 결방 선언에 참사의 슬픔과 비통함과는 별개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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