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1일) 낮 12시 충남 보령시 동대동 홈플러스 보령점. 회생절차가 막을 내린 매장에서는 장을 보러 나온 가족들의 웃음소리 대신 텅 빈 진열대와 ‘50% 할인’, ‘1+1’ 안내문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계산대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지만 장바구니를 채운 것은 먹거리보다 마지막으로 남은 할인 상품이었습니다. 반려동물 코너에는 햄스터와 앵무새를 무료로 분양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① "장례식장 온 기분"… 홈플러스, 눈물의 세일
한때 국내 대형마트 2위였던 홈플러스가 사실상 ‘재고 정리 매장’으로 변했습니다. 회생절차 종료 이후 상품 공급이 끊기면서 식품 매대는 비었고, 점포마다 마지막 할인 상품을 사려는 소비자들이 몰렸습니다.
매장 안쪽에 위치한 식품 매대 상당수는 선반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비어 있었습니다. 라면과 과자, 음료는 물론 냉장·냉동식품까지 대부분 자취를 감췄습니다. 남아 있는 상품은 세제와 문구류, 수납용품 등 유통기한이 없거나 긴 생활용품이 주를 이뤘습니다.
곳곳에는 ‘1+1’, ‘50% 할인’, ‘최대 70% 할인’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손님들은 장을 보기보다 할인 폭이 큰 상품을 찾느라 매대를 훑었습니다. 유모차와 카시트, 아기 식탁의자 등 육아용품 코너에는 절반 이하로 가격이 내려간 상품을 사려는 고객들이 몰렸습니다.
계산대 앞에는 20~30m가량 긴 줄이 이어졌습니다. 계산 직원 3~4명이 쉴 틈 없이 바코드를 찍었지만 줄은 좀처럼 줄지 않았습니다. 출입구에서는 도난방지 경보기가 여러 차례 울렸지만 이를 확인하거나 제지하는 직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일부 고객이 물건을 든 채 출입구를 지났는데도 별다른 통제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② 지역민 추억 담긴 생활거점 '흔들'
충남 보령과 경북 안동 같은 지방 중소도시에서 홈플러스는 대형마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습니다. 대도시처럼 대형 유통시설이 많지 않은 지역에서는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한꺼번에 살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자, 주말마다 가족이 모이고 주민들이 약속을 잡는 생활 거점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지역민의 일상에 자리 잡은 매장이 무너지면서 단순히 점포 한 곳이 사라지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익숙한 풍경과 생활 인프라까지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홈플러스 보령점을 찾은 김모 씨(56)는 “장을 보러 왔다기보다 마지막 세일을 보러 온 기분”이라며 “먹을 것은 거의 없고 생활용품만 남아 있어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박모 씨(34)는 “예전에는 아이들이 시식 코너를 돌고 장난감 코너에서 뛰어다녔는데 오늘은 그런 분위기를 찾기 어렵다”라며 “장례식장에 온 것처럼 마음이 너무 많이 무겁다”라고 했습니다.
같은 날 찾은 홈플러스 안동점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계산대에는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섰지만 신선식품과 가공식품 코너는 대부분 비어 있었습니다. 일부 통조림과 조미료를 제외하면 먹거리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대신 생활용품과 주방용품, 문구류가 남은 매대를 채웠습니다.
안동점은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이 장을 보고 외식을 하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복합 생활공간 역할을 해왔습니다. 인근 주민들에게는 “홈플러스 앞에서 만나자”라는 말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익숙한 장소였습니다. 매대가 하나 둘 비어 가는 모습에 할인 상품을 고르던 고객들 사이에서도 아쉬움 섞인 말이 이어졌습니다.

③ 회생·파산 갈림길 선 홈플러스
홈플러스는 지난해 3월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해 같은 날 법원의 관리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납품대금 회수를 우려한 협력업체들이 공급을 줄이면서 식품을 중심으로 상품 수급이 흔들렸습니다.
홈플러스는 대형마트 126개를 67개 핵심 점포로 재편하고, 슈퍼마켓 사업부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지난 5월 하림그룹 계열 NS쇼핑에 1206억원에 매각했습니다. 자연 퇴사와 희망퇴직 등을 거치며 인력도 회생 신청 당시보다 약 50% 줄였습니다. 홈플러스는 이 같은 구조조정으로 회생 신청 직전과 비교해 각종 비용을 약 1조 2000억원 절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3일 홈플러스가 제출한 회생계획 수정안의 수행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인가 전 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했습니다. 핵심 점포의 상품 공급과 영업을 정상화하려면 최소 2000억원의 신규 운영자금이 필요하지만, 이를 조달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삼일회계법인이 지난해 6월 산정한 홈플러스의 계속기업가치는 약 2조 5058억원으로, 청산가치 약 3조 6816억원보다 1조 1758억원가량 낮았습니다. 현 상태에서는 회사를 계속 운영하는 것보다 점포와 부동산 등 자산을 처분하는 편이 채권자에게 유리하다는 의미입니다.

홈플러스는 오는 20일까지 즉시항고할 수 있습니다. 이 기간 자금 조달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항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파산·청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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