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라는 거대 스피커의 음모론, 언론이 '주류 담론'으로 만들어
극우·포퓰리즘 연구자인 카스 무데 미국 조지아대 교수는 “언론은 극우의 우군이자 적이라는 양면성이 있다”라고 규정합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극우를 지지하지는 않고, 극우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지만, 그들은 극우가 잘 팔린다는 것을 눈치챘으며, 극우의 목소리뿐 아니라 그들의 프레임과 쟁점을 채택함으로써 우익 포퓰리즘을 점점 더 지지하는 데 앞장섰다”라는 관점(저서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중)입니다.
이는 지난해 12·3 내란사태 이후 한국 사회의 현실과도 맥이 닿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중심으로 집권 세력과 유착한 극우 세력이 출현하고, 한때 극단적 소수가 추종하던 부정선거 음모론이 대두됐습니다. 그 배경으로 근거 없는 허위 주장과 음모론을 기성 언론조차 걸러내거지 않고 확산시킨 책임을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발화자가 된 최근의 부정선거 음모론은 역대 유사 음모론에 비할 수 없이 파괴력이 큽니다. 과거 부정선거 음모론은 2002년 한나라당의 대선 불복, 2017년 대선을 앞둔 김어준씨 중심의 'K값' 의혹, 2020년 황교안 전 국무총리(전 미래통합당 대표) 등의 21대 총선 부정선거 의혹 등 선거에서 패한 세력 쪽에서 제기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그라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부정선거 의혹은 주류 언론의 경쟁적 보도 소재가 됐습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2024년 12월 3일부터 2025년 2월 3일까지 두 달간 104개 매체의 '부정선거' 관련 보도는 4717건(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로 수집 및 분석)에 달했습니다. 비상계엄이 있기 전 최근 10년간 '부정선거' 보도가 가장 많았던 시기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전 미래통합당 대표) 등의 4·15 총선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했던 2020년, 연간 총 4212건입니다.
언론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의자인 윤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언급할 때마다 들썩였습니다. '부정선거' 관련 일별 기사량은 윤 대통령이 처음 대국민 담화로 부정선거를 언급한 지난해 12월 12일 184건, 윤 대통령 페이스북에 올린 자필 편지에서 부정선거가 언급된 1월 15일 182건, 윤 대통령이 직접 탄핵심판 변론에 나서 부정선거를 언급한 1월 21일 267건 생산됐습니다. 빅카인즈에 수집되지 않은 매체 기사들을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부정선거' 기사가 대중에게 전파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도의 상당수는 윤 대통령 측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거나 공방 양상으로 다뤘습니다. 부정선거 보도량이 가장 많은 1월 21일 약 270건의 기사 중 40건가량이 윤 대통령 주장만을 단순 전달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주장에 '궤변' 등 표현을 붙이거나 야당과의 공방 문구를 붙인 기사는 제외한 건수가 이 정도 수준입니다. 윤 대통령 주장을 검증한 기사는 MBC, 경향신문, 한겨레, SBS, 한국일보 등에서 주로 나왔습니다.
의혹을 다룬다는 명목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에 힘을 싣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전하는 보도 행태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KBS 1TV의 뉴스쇼 형식 시사 프로그램인 '사사건건'에서 송영석 앵커가 지난 달 22일 방송에서, 한국에선 수개표를 병행하기에 부정선거는 어렵다는 취지의 패널 발언을 두고 “타이완 같은 완전한 수개표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반박한 일이 논란을 불렀습니다. 지난 22대 총선에선 수개표가 이뤄진 만큼 사실과 다른 주장을 했다는 점에서 안팎의 비판을 샀습니다.
특히 '속보'는 사실상 부정선거 음모론의 전광판 역할을 했습니다. 두 달간 빅카인즈로 추출한 제목에 정확히 [속보]가 들어간 기사는 39건, 이 가운데 윤 대통령(尹, 尹측, 윤 대통령 등)이 주어인 속보는 17건으로 전체 43.6%에 달했습니다.
최근 들어선 언론이 새로운 극우 인사를 띄우는 역할도 두드러졌습니다. 속칭 '한국사 일타강사'로 불리는 전한길씨 보도가 연일 쏟아지면서입니다. 전씨를 비상계엄 국면에서 소환한 대표적 기사는 매일신문의 1월 20일 <尹 구속 직후 전한길 “부정선거 반드시 잡겠다고 계엄 선포…대만처럼 수작업하자”> 기사로, 전씨 유튜브 영상을 캡처한 사진 7장이 첨부됐습니다. 비상계엄 이전에 전씨는 주로 보수 성향 또는 기독교 기반 매체에서 언급되거나, 이승만 독재 미화 논란의 영화(건국전쟁) 옹호 및 성소수자 혐오 발언 등으로 기사에 오른 바 있습니다.
매일신문 보도 이후 전씨가 부정선거 의혹에 힘을 싣는 주장을 따옴표로 단순 전달한 기사가 이날 하루에만 49건 나왔습니다. 전씨가 윤 대통령 옹호 측 집회에 나서거나 유튜브 영상을 올리면 언론이 이를 받아 확산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그의 영향력 또한 커지는 양상입니다.
이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대표되는 극우 세력의 음모론은 다수의 언론을 타고 주요 의제화했습니다. 윤 대통령 측이 사법 체계를 부정하는 주장 또한 여과 없이 퍼지고 있습니다. 앞서 언론인 현업 단체와 관련 시민 단체들이 언론이 '내란 선동 스피커가 되어선 안 된다'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표명한 것과 반대로 가는 양상입니다.
이에 채영길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은 3일 민언련 특별 칼럼에서 “한 사회가 위기에 처할 때 가장 먼저 언어가 무너진다. '거짓'은 '논란'이 되고, '선동'은 '의견'으로 둔갑하며, '쿠데타'는 '경고'로, 내란은 '시위'로 변형된다. 언어가 혼탁해지는 순간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도 왜곡된다”라며 “언어의 혼탁은 저널리즘 실패의 명백한 징후”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채 교수는 ▲기계적 중립을 거부하고 민주주의 입장에서 취재와 보도를 결정 ▲언어의 전장(戰場)을 선점 ▲허위 정보와 '거짓 균형'을 적극 배격 ▲극우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는 우파 미디어 프레임은 해석이 아닌 해체 대상 ▲소셜미디어 플랫폼도 저널리즘 책무를 지고 스스로 통제 ▲언론인들은 민주주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회복적 저널리즘' 실천 등을 비롯한 '내란 극복을 위한 저널리즘 10원칙'을 제안했습니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는 통화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이) 유튜브나 SNS 같은 소통의 영역에서 이런 게 확산됐더라도, 이걸 주류 담론처럼 보이도록 착시 현상을 만든 건 찬성이든 반대든 그걸 주류 소통 공간에 끌어오고 뿌려준 기존 제도 언론의 책임이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는 “부분적이고 단편적으로 주어지는 정보를 가지고, 수용자가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바람직한 결론을 내릴 거라 기대하긴 어렵다. 진실이 무엇이지 정확히 알려주는 기획 취재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일부 언론이 면피성으로 음모론을 '공방 형태'로 보도하는 것을 두고는 “(윤 대통령 주장 뒤에) '민주당이 억지 주장이라고 했다'라는 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반론을 싣는 걸로는 교정이 안 된다”라면서 “취재에 따라 사실이 다르고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을 모아서 상식적 사고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무기를 줘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나아가 김 교수는 “아무리 (기획이나 검증 기사를) 써도 양산되는 기사 속에 묻혀버리거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다”라면서 “필요한 내용을 입증하고 사회 전체에서 중요한 걸 강조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경쟁력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내가 충분히 이해하고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기사를 쓰는 것이 일반 언론사의 경영 관점에선 쉬운 일이 아닌데 기자의 관점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며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기사를 써야 한다”라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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