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3년 동안 민주주의는 퇴보했고 한국 사회 곳곳에 퇴행의 상흔이 남았습니다. 특히 언론 미디어 분야를 돌아보면, 해체 수준의 공영방송 장악과 정부 비판 언론에 대한 탄압·압박이 이어졌습니다. 그 사이 미디어 생태계는 급변했지만 관련 대응 정책은 전무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K-팝에 이어 K-콘텐츠가 각광받는 시대입니다. 그런 한편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외주제작사로 향하는 방송사 PD의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과연 미디어 시장의 변화를 K-콘텐츠의 주역인 제작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올 1월 임기 시작한 김재영 한국PD연합회장을 지난 8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만나 관련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다음은 김 회장과 나눈 일문일답입니다.

♣ Q1. PD연합회장 취임하신 지 4개월 지났습니다? ♣

“2025년 1월 1일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이후 지난 4개월 동안 한국 사회가 굉장히 어려운 일을 겪었잖아요. 사실상 국가가 정지된 상태였는데요. PD연합회 차원에서도 생존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었고, 또 다른 도약을 위해 준비하는 시기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국민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선택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았잖아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을 때 PD연합회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난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미디어 정책이라는 게 ‘검열과 탄압’ 말고는 거의 없었습니다. 여러 좋은 프로그램들도 많이 나왔지만, 그건 PD들의 창의성과 노력에 기반한 결과물이었고 정부 차원의 지원 같은 것들은 굉장히 미흡했습니다. 국가 전체적으로 R&D 투자가 굉장히 줄었잖아요.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가 PD연합회나 방송기자연합회, 방송기술인연합회 등 방송 유관 단체들이 해왔던 교육사업 예산도 다 끊어버렸어요.

PD연합회도 교육사업이 협회원들과 함께하는 중요한 사업 중 하나였는데 그런 게 굉장히 침체돼 있는 상황이었어요. 지난 4개월 동안 이 부분을 어떻게든 복원하려고 노력했고, 방송기자연합회와 방송기술인연합회 등과 함께 대응하는 과정에서 소정의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 하반기에는 협회원들 대상의 교육사업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되었습니다.

방송산업의 변화에 있어서 지금은 기술적으로나 산업적으로 중요한 시기거든요. 6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을 때 어떻게 하면 PD연합회원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제작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고 있는 시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Q2. PD연합회장 전 MBC PD협회장을 맡으셨는데요? ♣

“MBC PD협회장을 맡았을 때가 지난해였죠. 지난해는 윤석열 정부의 언론탄압이 지속되던 시기였고, 특히 제가 몸담은 MBC 같은 경우 그 탄압의 1순위였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한 권력기관에서 사장 교체 시도를 지속하던 시기였어요. MBC는 자체적으로 법적 투쟁을 하고 있었지만, 그 법적 투쟁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통위 2인 체제의 의결이 불법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제가 회장을 맡게 됐습니다.

PD연합회장의 경우 MBC와 KBS, SBS가 번갈아 가면서 맡는 관행이 있거든요. 당시에 KBS도 이미 안 좋아졌던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전임 김세원 KBS PD협회장이자 한국PD연합회장도 굉장히 힘든 상황 속에서 근근히 연합회를 이끌고 있는 상태였는데, 사실 걱정이 많았어요. KBS에 이어 MBC도 곧 굉장히 안 좋은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는 환경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PD연합회라는 작은 울타리를 지키려는 회원들의 믿음이 있었고 그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국PD연합회가 존속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MBC PD협회장을 맡았습니다. 한국PD연합회 당연직 이사로 연합회가 굉장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이고, 작지만 중요하고 소중한 울타리라는 생각을 했어요. MBC PD협회장 그리고 한국PD연합회 소속 이사로서 1년 동안 활동하면서 연합회장이 된다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차근차근 준비했죠.”

♣ Q3. 어떤 점이 가장 고민이었나요? ♣

“사실 그 당시에는 뭘 할지에 대한 고민보다, 연합회를 지속시켜야겠다는 게 우선순위였어요. 그런데 비상계엄이 터지면서 새로운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죠.”

♣ Q4. 연합회장 출마의 변에서 “미디어 정책과 지원이 전무한 상황이지만 작은 돌파구를 만들겠다”라고 하셨는데요? ♣

“돌파구를 만드는 중이죠. 사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미디어 진흥 정책이 있었다고 보지는 않아요.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미디어산업 생태계에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대체로 부정적인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방송 생태계의 붕괴, 미디어업계의 부진이 왜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규제 일변도의 정책에서 벗어나 PD들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여론을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아마 뜻있는 정치권에서도 이런 점에 대한 정책 준비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지금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민주적으로 바꾸는 방송3법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지상파와 지역방송 그리고 독립 제작사 등 ‘콘텐츠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에 관한 공감대가 지금 정치권에서도 퍼지고 있다고 보고요. 앞으로 새 정부가 들어선다면 이 점을 더 적극적으로 주장할 것입니다.

지금 선거기간이잖아요. 국회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경우 방송 종사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국민의힘과도 미디어 산업에 대한 비전을 공유해야겠죠.”

♣ Q5. 지상파에 대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심한 것이 사실인데요. 이것이 미디어 산업 전반에 어떤 영향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

“지상파에 대한 규제도 심하고, 지상파뿐만 아니라 방송 시장이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지상파부터 독립 제작사들까지 다들 굉장히 힘든 상황이거든요. 몇몇 K-콘텐츠들이 굉장히 큰 성공을 거두고 있긴 하지만 그건 아주 소수이고, 다수의 콘텐츠 제작자는 정말 힘든 상황을 겪고 있어요. 이 상황은 어느 한 가지 요인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윤석열 정부가 제일 큰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정부는 좀 더 나을 거로 기대하고 있어요.

지상파에 규제와 심의 제도, 불공정한 관행들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요.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탈피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약한영웅>이라는 드라마가 얼마 전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고 큰 성공을 거뒀죠. 사실 <약한영웅>은 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였어요. 웨이브라는 데는 지상파들이 SK와 합쳐서 만든 토종 OTT인데 웨이브는 거의 사그라들어서 그 콘텐츠를 넷플릭스에 팔았단 말이죠.

그러고 나서 최근 <약한영웅 2>가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면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어떤 장면을 보면 표현의 수위가 ‘지상파’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제작됐죠. 그래서 굉장히 자극적인 요소도 있지만 그 드라마가 지향하고 있는 드라마적 의미가 시청자들에게 다가가서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단 말입니다. 사실 그 정도 표현 수위는 지상파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표현 수위이긴 해요. 그런 것들도 일종의 불공정한 게임인 거죠.

제가 얘기하는 건 완전히 똑같아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OTT에서 허용되는 범위까지는 아니겠지만, 지상파 같은 경우 분명히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런 불공정한 규제들이 기존 방송 사업자들에 소속된 PD들의 표현의 자유에도 영향을 미치고, 당연히 방송 사업자들의 비즈니스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말로만 ‘넷플릭스 드라마는 되는데 왜 지상파는 못하냐’고 탓할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규제를 풀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 Q6. 방송사 PD들의 이직이 많아졌고, 시청자도 TV보단 OTT를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은? ♣

“PD들이 많이 빠져나갔다고 볼 수는 없어요. 하지만 중요한 작품들이나 시선을 모은 작품들이 넷플릭스 등 OTT 통해서 화제가 되는 건 사실이죠. 시청자들도 TV보다 OTT를 더 많이 소비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TV 시청 시간이 빠지고 그만큼 OTT 소비가 늘어난 게 아니거든요. 물론 TV 시청 시간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긴 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청 시간을 OTT가 가져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전체적으로 시장 파이는 커진 거죠.”

♣ Q7. 지금 2030 세대는 TV를 거의 안 본다고 하거든요. ♣

“근데 그 2030 세대가 TV를 보지는 않지만, 유튜브 등을 통해서 기존 TV에서 유통되는 콘텐츠들을 보거든요. 그리고 TV에서 지금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들도 OTT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그것을 꼭 제로섬 게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SBS 프로그램도 넷플릭스를 통해서 볼 수 있고, MBC의 많은 프로그램들도 유튜브 통해서 일정 정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웨이브랑 티빙이 합쳐진다면 지상파 프로그램들이 OTT를 통해서도 방송이 되는 거니까 이게 계속 융합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OTT와 지상파 혹은 다른 저희 회원들이 있는 콘텐츠 시장이 결합되는 것이지, 제로섬 게임으로 서로 파이를 뺏고 뺏기는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시장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 Q8. 그 부분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거든요. ♣

“정부가 일단 규제를 풀어야 하고, 지원도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방송발전기금이라든지 언론진흥재단이 정부광고 대행 수수료로 조성한 언론진흥기금 같은 공적기금들은 굉장히 큰 규모입니다. 그런데 그 기금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콘텐츠를 만들고 송출하는 방송사들이 존재하기 때문인 건데요. 저는 이 기금들을 콘텐츠 만드는 데 전부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공영방송이 담당하는 공적영역의 프로그램 제작에 적극적으로 투여해야 해요. 지금 드라마 산업도 굉장히 위축되고 있는데 ‘<폭싹 속았수다> 같은 드라마를 왜 너네들은 못 만드냐’라고 질책만 할 것이 아니라, MBC나 KBS 같은 공영방송에서 그런 국민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만들어줄지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방송발전기금이나 언론진흥재단으로 들어가는 정부광고 대행 수수료 같은 경우 그야말로 공적재원이잖아요. 그런 공적기금 활용 방안,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좋은 드라마 제작 지원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올 수 있게 저희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 Q9. 협회장 취임사를 통해 “생존을 넘어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셨더라고요. 아마도 예산 문제가 가장 중요할 텐데요. ♣

“PD연합회가 여러 사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구체적으로는 말씀 못 드리지만 하반기에는 좀 더 나아질 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육사업도 더 확대될 것이고요. 하반기부터는 각 지자체와 같이 하고 있는 사업들도 여러 가지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 Q9. PD연합회에서 올해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은 뭔가요? ♣

“올 하반기에는 회원들이 교육이라든지 연수에서 좀 더 나은 경험을 할 수 있게 저희가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 있거든요. 이 프로젝트를 하반기에 집중적으로 하게 될 예정이에요.”

♣ Q10. 6월 4일 새 정부가 출범할 텐데 방송정책에 대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

“지난 3년 간 윤석열 정부는 방송사 규제를 넘어 탄압했던 거잖아요. 새 정부가 들어선다면 당연히 좀 더 나은 환경이 될 거라 기대하고 있고, 특히 미디어산업을 국가 역점 산업으로 키울 거라고 믿어요. 미디어산업은 고용창출 효과가 크고, 특히 K-콘텐츠라는 것은 대한민국 전체의 이미지를 알리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산업이잖아요. 지금까지 엄청난 성과도 있었고요. 그래서 적극적인 진흥 정책이 나올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방송3법을 통해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언론자유를 확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방송산업과 미디어산업도 키울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도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지금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흐름에 맞지 않았던 규제 정책을 폐지하고 진흥 정책을 제대로 만드는 데 PD연합회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예정입니다.”

♣ Q11. 남은 임기 8개월 동안의 계획은? ♣

“실질적으로 8개월 남았어요. 지난 3년 동안 PD연합회도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잘 견뎌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좀 더 나은 여건을 만들어 차기 회장에게 이 역할을 넘겨주는 게 제일 중요한 과제지요. 지금까지는 이 연합회라는 작은 울타리를 지키는 데 주력했지만 이제 좀 더 확장시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더 고민하고 노력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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