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故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를 향한 괴롭힘 행위가 있었다면서도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MBC는 프리랜서 구조를 만들고 괴롭힘을 예방 못 한 책임을 인정하라"라는 유족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노동부가 방송사의 '무늬만 프리랜서' 고용 관행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오 캐스터는 지난해 9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숨졌습니다. 그는 2021년 MBC에 '공채'로 입사해 프리랜서 계약을 적용받고 일했습니다. 주 5~7일 방송 시간 3시간 전 출근해 기상팀장과 파트장 지시에 따라 원고를 고치고 방송을 진행했습니다. 기상재난파트장 등 데스크가 빠진 기상팀 단체 대화방에선 '파트장 회의 결과'라며 업무 지시가 이뤄졌습니다. 노동전문가들이 "지휘·감독의 외주화 시도"라고 지적한 업무 구조입니다. 오 캐스터는 이 같은 업무 구조 속에 괴롭힘 대상이 됐습니다. 선배 캐스터들로부터 고인이 실수하면 조직 전체가 사라진다는 압박성 발언과 업무 지시를 넘어선 공개 비난을 받았습니다.

노동부는 지난 2월부터 석 달여간 MBC를 상대로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한 결과, 故 오 캐스터에 대한 괴롭힘 행위가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고인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기 어렵다"라며 "같은 법 76조의 2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밝혔습니다. 업무상 위계에 따른 괴롭힘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오 캐스터 등 기상캐스터들이 '독립사업자'로 일했다며 상충된 결론을 냈다고 지적받는 이유입니다.

① 각종 지휘·감독 기록에도 "재량껏 자율업무"

노동부는 오 캐스터 노동자성을 부정한 5가지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구체적 지휘·감독 없이 기상캐스터가 상당한 재량을 갖고 자율적으로 업무 한 점 ▲MBC와 계약된 업무 외 MBC 소속 근로자가 통상 수행하는 업무를 하지 않음 ▲일부 캐스터는 외부 기획사나 엔터테인먼트사에 속해 외부 영리활동을 하고 수익 전액을 가져간 점 ▲취업규칙이나 복무규정을 적용받지 않고 방송 시작 2~3시간 전 자유롭게 출퇴근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휴가 사용 관련해 별도 절차가 없고, 기상캐스터가 코디를 두고 의상비를 지불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노동법 전문가들은 기상캐스터의 실제 업무 양태를 따지지 않고 형식만 살핀 결과라고 반박했습니다. 하은성 샛별노무사무소 노무사는 겸직 사실 자체로 노동자성을 부인한 것이 대법원 판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간 확립된 판례에 따르면 업무 외 영리활동을 한 사실 자체로 노동자성을 부인하기 어려운 데다, 도리어 기상캐스터들이 공채로 입사해 타사 기상캐스터로 활동하지 않은 점에서 전속성을 부인할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노동부 주장과 달리 'CCTV를 사용해라', '극단적 표현 사용하지 마라' 등 회사의 구체적 업무 지시가 내려온 증거도 다수 확인됐습니다. 기상캐스터들이 서로 연휴와 휴가 '대타자'를 정해 MBC에 사전 보고한 사실도 있습니다.

② "노동자성 판례, 오요안나 캐스터에도 적용되는데"

방송계 '무늬만 프리랜서' 판례에 비춰도 오 캐스터를 MBC가 고용한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법원은 2014년 MBC 프리랜서 시사교양 PD 부당해고 사건에서 "이들의 업무는 프로그램 제작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정규직 근로자들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수행하는 것으로 일부만 따로 떼어내 독립사업자에 위탁할 만한 성격으로 보이지 않는다"라며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했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MBC 프리랜서 방송작가들에 대해 '출·퇴근 시간을 분 단위로 관리·감독받지는 않았지만 방송 일정에 맞춰 출퇴근했다'라며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대표(변호사)는 "이들 판례는 오요안나 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라며 "그럼에도 노동부는 형식만 따져 '당신이 당한 건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다'라며 돌려보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오늘(20일) "반박에 대해 건건이 말하긴 어렵다"라며 "대법원 판례와 근로자성 판단 요소를 따져 전체적으로 사용종속성이 있는지 판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노동부는 보도자료에서 "조직문화 전반에 대한 개선계획서를 제출받고 그 이행 상황을 확인하는 등 적극 개선 지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노동법 위반에 따른 조치가 아닌 탓에 시정기한은 없습니다. 오 캐스터 어머니 장연미 씨는 "이번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모두가 외면하나"라며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결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유족들은 노동부 판단에 불복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③ MBC, 6월 12일까지 '위장 프리랜서' 근로 계약해야

한편, 노동부는 이번 특별근로감독 결과 MBC 보도·시사교양국 내 '프리랜서' 35명 중 25명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MBC가 FD(무대진행), AD(조연출), 취재PD, 편집PD 등을 '위장 프리랜서'로 써왔다는 판단입니다. 노동부는 "현재 근로조건보다 저하되지 않는 범위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하도록 시정 지시하고 이행 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MBC는 오는 6월 12일까지 시정을 완료해야 하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노동부가 고의성 여부를 판단해 근로기준법 위반 벌칙조항을 적용합니다.

노동부는 또 MBC가 방송지원직과 계약직 노동자들에 연장근로수당과 연차유급휴가를 과소 지급하는 등, 1억 8400만 원의 임금체불을 포함해 6건의 노동관계법 위반을 적발했다고도 밝혔습니다. 노동부는 이를 포함한 4건의 위반 사항에 대해 수사하기로 했고, 2건엔 과태료를 부과했습니다.

MBC는 어제(19일) 뉴스데스크 사고(社告)를 통해 "고용노동부의 판단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관련자에 대한 조치와 함께 조직문화 전반을 개선해 나가겠다"라며 "상생협력 담당관을 신설해 프리랜서 간, 비정규직 간 발생한 문제도 당사자 및 제3자가 곧바로 신고해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일부 프리랜서들의 근로자성 판단에 대해서는 법적 검토를 거쳐 조속한 시일 내 합당한 조치를 시행하겠다"라며 "오요안나 씨의 안타까운 일에 대해 유족들께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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