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방송 첫 전파가 발사된 지 9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1927년 2월 16일 오후 1시 라디오에서 "JODK. 여기는 경성방송국입니다."라는 일본어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첫 방송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말을 한껏 방송 못 하는 민족의 아픔과 한을 품고 태어났습니다. 초창기는 일본어와 한국어를 7:3 비율로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방송 미디어로 장기간 큰 인기를 누렸던 라디오 청취율이 점차 감소하면서 라디오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성기를 누렸던 AM 라디오 시대가 저물었습니다. MBC와 SBS는 2022년 11월 8일 0시부터 AM 라디오 송출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벌써 2021년 11월 19일부터 대구 MBC를 시작으로 각 지역 MBC 방송국이 잇따라 AM 라디오 방송의 송출을 중단했습니다.

AM은 전파가 도달하는 거리가 길어 소수의 송신소로 전국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만 품질이 낮고 유지비가 많이 든다는 점입니다. AM 라디오 방송의 쇄락은 TV나 유튜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 다양한 뉴 미디어 채널을 통한 콘텐츠 접근성의 확대와 FM 망에 비해 떨어지는 오디오 품질 등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MBC는 1961년 12월 2일부터, SBS는 1991년 3월 20일부터 AM 라디오 방송을 했습니다. 60여 년간 방송되던 AM 라디오 시대가 대단원의 마침표를 찍는 것입니다.

그러나 라디오가 지닌 특성과 가치가 생존의 여지를 안고 있습니다. 소리만을 매개로 한다는 점이 한계점이지만 라디오만의 고유한 가치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경쟁 매체의 범람 속에서 라디오의 일상성, 정보성, 개인성, 대체 미디어, 재해재난방송, 음악 미디어 등의 특성은 라디오 자체의 가치로 인해 생존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1990년대보다 2000년대에 더 높은 라디오 청취율을 이끌어 내는 사례가 있습니다.

라디오 방송 개시 1세기 동안 TV 방송 등장으로 방송환경 변화의 격랑 속에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1961년 12월 31일 KBS-TV 개국을 필두로 1964년 12월 7일 민영 TBC-TV와 뒤를 이어 1969년 8월 8일에는 MBC-TV 개국으로 KBS·MBC·TBC의 3대 TV 시대를 열었습니다. 1973년 3월 한국방송공사 발족으로 공영방송 시대가 열리고, 1980년 11월 30일 언론통폐합으로 양대 공영방송사(KBS·MBC) 체제로 접어들었습니다.

1991년 12월 9일 SBS TV가 개국했고 1995년 5월 14일 지역 민영방송(KNN·TJB·TBC·kbc)이 등장했습니다. 국내 방송계의 가파른 변화는 뉴 미디어 등장으로 1995년 3월 케이블 TV, 2002년 3월 위성방송, 2005년 12월 지상파 DMB, 2008년 11월 IPTV 도입으로 플랫폼의 다채널 시대를 열었습니다. 2011년 12월 1일 개국한 4개의 종합편성채널 출범과 2012년 12월 31일 지상파 디지털 TV 방송 시대 개막, 2013년 OTT(Over The Top)의 등장으로 기존 지상파 TV의 점유율이 점차 잠식당하며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어서 유료방송계의 합종연횡으로 LG유플러스와 CJ헬로비전,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에 이어, KT와 현대 HCN까지 각각 짝을 찾으면서 6년 동안 이어진 유료방송 시장 새판짜기가 마무리했습니다.

방송환경 변화의 경우 디지털화와 방송·통신 융합 현상 가속화와 IPTV, OTT 등 VOD 서비스는 시청행태와 기존 편성개념을 변화시켰습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의 가속화와 OTT 중심의 시장 변화로 미디어계에 변혁의 거센 바람이 불어 닥쳤습니다. 지상파 TV의 시청률 하락과 공영방송의 위상이 위축되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국내 OTT 시장을 주도한 넷플릭스에 이어 막대한 콘텐츠와 자본력의 '디즈니+'와 '애플TV+'의 한국 상륙으로 지각변동이 예상됩니다. 연이어 HBO 맥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같은 미국의 거대 글로벌 OTT 플랫폼들이 한국 진출을 서둘고 있어 치열한 각축장이 예상됩니다. 이에 따라 국내 방송계 케이블 TV·IPTV, 유료방송과 OTT 사업자는 비상입니다. 우리나라 OTT 플랫폼인 지상파 방송국과 SK텔레콤이 합작해 탄생한 Wavve를 비롯해 CJ ENM이 만든 TVING, Naver TV·KaKao TV, Watcha 등 토종 OTT 사업자들은 더욱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제 방송·영상 산업은 국내 사업자 중심의 시장 구조로는 더 이상 유지가 어려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을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하자 4주 만에 세계 1억 4200만 계정이 시청해 1위를 차지했습니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 제작비 253억 원을 투자해 40배가 넘는 1조 501억 원 이상의 경제 효과를 누렸습니다. 흥행 덕분에 신규 가입자가 440만 명이나 늘었고, 이어서 ‘지옥’이 하루 만에 세계 1위 자리에 올라 시청 순위 Top 10에 한국 드라마 4편이 안착했습니다.

국내 제작비는 미국 할리우드에 비해 10분의 1에 불과합니다. 넷플릭스가 K 콘텐츠를 세계에 알려주고자 투자한 것이 아니라, K 콘텐츠 경쟁력과 투자 대비 가성비가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스토리텔링이 인정받는 배경에는 웹툰과 웹소설에서 이미 검증된 이야기로 제작했기 때문입니다. ‘지옥’의 원작도 K 웹툰입니다. 국내 웹툰 시장 규모가 1조원 시대로 웹툰 분야에서 한국이 종주국의 위상을 갖게 됐습니다.

오징어 게임의 흥행수익과 저작권, 추가수익도 넷플릭스가 독식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갖는다”라는 비판입니다. 자본력이 취약한 국내 미디어 산업 구조상 국내 제작사들이 종속되거나 하청기지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향후 K 콘텐츠 경쟁력 확보 조건으로 작품 권리 확보가 시급합니다. 최근 지적 재산권(IP) 보호를 위한 세계적인 움직임도 있습니다. 지난해 6월 프랑스 저작권법은 글로벌 OTT에서 영상이 상영된 횟수에 따라 창작자에게 수익을 배분하는 것과 자국 내 수익의 20~25%를 현지 콘텐츠 제작 사업에 재투자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내 OTT 시장은 2023년 1조 5000억원 규모로 추정됩니다. 국내 OTT 산업을 지키기 위한 진흥법 제정이 시급합니다. 국내 OTT들의 콘텐츠 제작 공동 투자조합 등을 구성해 함께 제작하고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토종 OTT의 세계화로 살길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미디어 환경은 초연결성, 초 지능화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거대 흐름 속에 미디어 분야의 이용행태, 변화 양상은 가히 혁명적입니다. 지금까지 미디어는 방송(지상파·케이블·IPTV·위성방송 등)과 OTT·개인 소셜·MCN(Multi Channel Network)·디지털 사이니지 등 매스 미디어를 중심으로 서비스되고 생태계가 구축되어왔지만, 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인공지능(AI)·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클라우드 기술이 깊숙이 연계되면서 미디어 부분의 산업은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미디어 환경변화를 직시하고 4차 산업혁명 신기술 콘텐츠 개발의 선제권을 잡아야 합니다. 미래전략에서 기선을 잡고 위기를 기회로 포착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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