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와 변우석 주연의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이 지난 17일 최종회를 끝으로 종영한 가운데, 최고 시청률 13.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역사 고증 논란은 마지막까지 이어졌습니다. 특히 논란이 된 장면이 방송된 직후 온라인과 역사학계 안팎에서 비판이 확산되며 K-콘텐츠의 역사 감수성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 올렸습니다.
‘21세기 대군부인’은 21세기 대한민국이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가상의 세계관 속에서 왕실 로맨스와 정치 갈등을 그린 작품입니다. 현대적 감성과 궁중 문화를 결합한 독특한 설정, 아이유와 변우석이라는 톱배우 조합, 대규모 제작비를 앞세워 방영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실제로 첫 방송부터 두 자릿수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갔고, 최종회에서는 13.8%까지 치솟으며 올해 화제작 반열에 올랐습니다.
① “천세”·구류면류관 논란 확산
그러나 지난 10일 방송된 15회와 17일 방송된 최종회에서 등장한 왕실 의례 장면들은 거센 역사 왜곡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극 중 이안대군(변우석 분)의 즉위 과정에서 사용된 ‘구류면류관(九旒冕冠)’과 신하들의 “천세” 연호가 대표적이었습니다.
시청자들과 역사 연구자들은 대한제국 황실을 배경으로 한 설정에서 황제의 상징인 십이면류관(十二旒冕冠)이 아닌 구류면류관을 사용한 것은 자주국가의 역사성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천세”라는 표현은 전통적으로 황제국보다 아래 위계의 제후국 체계에서 사용된 표현이라는 점 때문에 논란이 더욱 커졌습니다.
또한 대군의 배우자를 ‘군부인(郡夫人)’이라 부른 점도 역사 용례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조선 왕실 체계에서는 대군의 부인을 일반적으로 ‘부부인(府夫人)’이라 예우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중국식 다도 장면까지 등장하면서 “한국 왕실 문화를 지나치게 혼합·왜곡했다”라는 지적도 이어졌습니다.
② 고개 숙인 배우들
논란은 방송 직후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습니다. 이후 제작진은 지난 12일 공식 입장을 내고 “세계관 설정과 역사적 표현에 대해 세심하게 검토하지 못했다”라고 사과했으며, 재방송과 OTT 서비스에서는 일부 자막과 음향을 수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주연 배우 아이유와 변우석도 각각 팬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사과문을 게시했습니다. 두 배우는 “작품에 참여한 배우로서 역사적 의미와 맥락을 더 깊이 고민했어야 했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단순한 한 편의 드라마 문제를 넘어선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021년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역시 중국풍 소품과 역사 왜곡 논란으로 단 2회 만에 폐지된 전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왜곡된 한국 역사 이미지가 해외에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결정적 이유로 작용했습니다.
반면 ‘21세기 대군부인’은 논란 속에서도 종영까지 이어졌고 이미 글로벌 OTT 플랫폼을 통해 해외 시청자들에게 공개가 완료된 상태입니다. 결국 사후 수정만으로는 이미 퍼진 역사·문화 이미지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③ 전문가 “기획·대본·촬영 단계부터 감수 필요”
전문가들은 이제 콘텐츠 제작 과정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재 국내 드라마 제작 구조에서는 역사·전통문화 전문가의 감수 체계가 사실상 의무화되어 있지 않다. 상당수 작품이 작가와 제작진 중심으로 세계관을 구성하고 촬영까지 마무리하는 구조입니다.
김헌식 문화 평론가는 이번 논란이 단순한 “드라마 속 실수” 차원이 아니라 기획·대본·촬영 단계 전반에서 전문 감수 시스템이 부재한 현실을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평론가는 “대중문화 콘텐츠는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음에도 이런 검증 구조와 거리가 멀다”라며 “역사 고증 역시 기획-대본-촬영본 단계에서 체계적인 감수 시스템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작가 개인이나 제작진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라며 “문제가 반복되는 근본 원인은 자문·검토 시스템 부재에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역사학회와 연구단체, 전통생활문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상설 자문 시스템 구축 필요성을 제안했습니다. 단순한 역사 자문을 넘어 궁중문화, 생활문화, 복식, 다도 등 세부 영역까지 포함하는 통합 검증 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김 평론가는 “문화산업이 성장하려면 기초 학술자료의 토대가 단단해야 한다”라며 “제작사·작가단체·방송사·플랫폼이 함께 참여하는 제도와 시스템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개별 제작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인 만큼 정부 차원의 정책 리더십이 필요하다”라며 “이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새로운 시도도, K-콘텐츠의 지속적인 확장도 어려워질 수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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