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타급 배우들이 연이에 드라마 업계의 제작 불황에 대해 이야기한 가운데, 예능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KBS는 지난 1월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과 '홍김동전'을 동시에 폐지했습니다. 현재 KBS는 12년 차 '슈퍼맨이 돌아왔다', 8년 차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 2', 6년 차 예능 '개는 훌륭하다' 그리고 지난 2007년 시작해 시즌4로 이어진 '1박 2일' 등 장수 예능들이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MBC는 18년 차 '라디오스타', 12년 차 '나 혼자 산다', 7년 차 '전지적 참견 시점', 6년 차 '놀면 뭐하니?' 등이 시청자들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SBS는 14년 차 '런닝맨', 9년 차 '미운 우리 새끼', 8년 차 예능 '동상이몽 2-너는 내 운명', 4년 차 '신발 벗고 돌싱포맨' 및 '골때리는 그녀들' 및 '강심장 VS' '덩치 서바이벌-먹찌빠' 등을 방송 중입니다.

TV조선은 현재 방영 중인 6개의 프로그램 중 '노래하는 대한민국' '미스트롯3 갈라쇼' '화요일은 밤이 좋아' 미스터 로또' 등 4개가 트로트 예능이며, 2개는 '조선의 사랑꾼' '아빠하고 나하고' 등 화제성이 보장되는 가족 관찰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MBN은 트로트 예능 '현역가왕' '불타는 장미단' 그리고 13년 차 장수 토크쇼 '속풀이쇼 동치미' 등을 방영 중입니다. 최근에는 '전현무계획' 및 '가보자 GO'를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케이블 채널 tvN 또한 7년째 이어오고 있는 대표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놀라운 토요일'을 포함, 시즌 4까지 진행된 여행 예능 '텐트 밖은 유럽' 시리즈 및 '아파트 404'를 방송하고 있습니다.

현재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국 3사는 굵직한 장수 예능 프로그램 위주로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종합편성채널 중 TV조선과 MBN은 고정 시청층을 확실히 보유한 트로트 예능에 주력하는 모습입니다.

요즘 예능계를 다른 시각에서 보면, 새로운 프로그램 및 새 시도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최근 새로운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MBC는 파일럿 예능으로 '송 스틸러'와 '뭐먹을랩'을 지난 연휴에 선보였으며, 그 중 음악 프로그램 '송 스틸러'는 정규 편성이 확정돼 오는 5월에 방송됩니다. 또한 다음달 새 예능 '청소광 브라이언'을 2부작 파일럿으로 공개합니다. SBS는 지난해 예능 '강심장 VS'와 '덩치 서바이벌-먹찌빠'를 론칭했습니다. MBN은 지난 2월 새 여행 예능 '전현무계획', 지난 15일 길거리 토크쇼 '가보자 GO'의 첫 방송을 각각 마쳤습니다. tvN은 최근 유재석 차태현 제니 등이 출연하는 추리 예능 '아파트 404'를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최근에도 새로운 시도가 있기는 했지만, 이전과 비교할 때 현 예능계의 상황을 고려할 때 새 포맷의 프로그램을 탄생시키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한 예능 PD는 "투자가 얼어붙어서 제작 편수가 줄었다, 예를 들어 지난해 10개를 론칭했다면 올해는 3개밖에 못 하게 됐는데 그렇게 되면 스케일이 크거나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프로그램을 위주로 선보인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예전에는 새로운 포맷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새 예능이 많이 줄었다"라며 "오히려 수익성이 보장되어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낮아도 지속해서 제작되고 있는 이유"라고 덧붙였습니다.

다른 예능 PD는 "드라마 제작비는 너무 많이 드니까 드라마를 줄이고 예능을 늘리는 것이 이전 추세였는데, 지금은 예능 제작 편수도 줄어드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장에선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이 나오더라도 자리 잡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한 명의 예능 PD는 "예능 프로그램은 짧은 시간 만에 인기를 끌고 잘되기가 쉽지 않은데, (방송사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프로그램의 가치를) 길게 보려는 여유가 줄었다"라고 했습니다.

정윤경 시청자위 부위원장, 격월·서면 제안… "다르게 운영돼야"
선거 특별방송도 못 해… TBS 민영화 위한 용역 무응찰로 끝나

TBS 서울교통방송이 폐국 위기에 서 있는 가운데, TBS 시청자위원이 회의비를 줄이기 위해 서면·격달로 회의를 진행하자고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TBS 정상화를 위해 가능한 모든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TBS가 민영화를 위해 발주한 '투자자 발굴 용역'은 무응찰로 끝이 났습니다. 희망퇴직으로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고 있으며 정태익 대표이사는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TBS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방송을 진행해 온 최일구 전 MBC 앵커는 6년 만에 '최일구의 허리케인 라디오'를 하차합니다. 서울시의 TBS 출연금은 오는 6월부터 끊깁니다.

이런 가운데, 정윤경 TBS 시청자위원회 부위원장(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이 회의비를 줄이는 등 특단의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정윤경 부위원장은 지난 1월 30일 회의에서 “정상적인 상황이면은 관계가 없는데,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돌아가는 환경에서 시청자위원회도 위기 상황을 인식하는 차원에서 다르게 운영돼야 한다”라며 “당분간은 온라인 비대면 회의로 하거나, 서면회의로 하면 예산도 축소하고 시간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정윤경 부위원장은 프로그램 의견을 내기 위해 TBS 방송을 들어도 재방송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우리도 '(회의비를) 안 받아야 되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비정상적인 재정에도 시청자위원회가 크게 염려하고 있는 바를 전달하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재경 시청자위원장(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은 "위원들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라고 밝혔습니다.

TBS는 제작비 부족으로 인해 4·10 총선 개표 특별방송을 이제 더 이상 제작할 수 없습니다. 이용철 보도본부장은 “예전처럼 선거 특별방송을 하기는 예산적인 부분이나 상황들이 녹록지 않다”라며 4·10 총선 개표 특별방송 대신 군소정당 후보들에게 3분씩 시간을 줘 공약을 홍보하게 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준비 중이라고 했습니다.

KBS 간판 아나운서와 연출자들이 떠나면서 이들의 공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KBS는 지난달 재정 및 경영 위기 극복 차원에서 특별명예퇴직 및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특별명예퇴직자 73명, 희망퇴직자 14명 총 87명이 지난 2월 29일자로 면직처리됐습니다. 이들의 공백을 메우고, 새로운 인력을 배치하는 봄개편도 지난 4일 이뤄진 가운데 베테랑들에 대한 그리움과 앞으로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흘러나오는 상황입니다.

특별명예퇴직 신청은 20년 이상 근속 및 정년 잔여(2월 29일 기준) 1년 초과 직원이 대상이었으며, 신청자는 정년 잔여기간에 따라 최대 기본급 45개월분과 위로금 1억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희망퇴직의 자격은 1년 이상 근속자로, 신청자는 최대 기본급 6개월분과 위로금 최대 3000만원을 수령할 수 있습니다.

공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각 프로그램의 얼굴로 활약했던 아나운서들입니다. 특별명예퇴직자 명단에는 KBS 1TV '뉴스 9' 메인 앵커와 '클래식 오디세이'(2000.7.1~2013.10.16) MC로 오랫동안 활약하며 KBS의 간판 아나운서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정세진 아나운서를 비롯해 KBS 1TV '국악한마당'을 진행해왔던 정은승 아나운서, KBS 제1라디오 'KBS 뉴스월드'와 KBS 제3라디오 '대한민국 인기가요' 등에 출연 중이던 김윤지 아나운서, '콘서트 필' 등을 진행했던 김한별 아나운서 등 총 7명이 포함됐습니다.

각종 TV와 라디오 등 각종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는 아나운서들이 7명이나 한꺼번에 빠지면서 이들이 진행을 맡았던 프로그램들은 개편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제작비 절감을 위해 외부 진행자에서 아나운서로 교체하는 개편도 이뤄지면서 "부족한 내부 인력을 돌려막는다"라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일각에서는 전문성있는 진행자가 하차했다는 아쉬움도 나왔습니다. 대표적인 분야가 전문성이 바탕이 돼야 하는 KBS 클래식FM입니다.

KBS 클래식FM은 국내 유일의 지상파 방송국 클래식 전문 채널입니다. 국악, 가곡, 재즈 등이 24시간 흘러나와 마니아층이 탄탄합니다. 지난해 TV 수신료 분리 징수로 KBS가 비상경영을 선포했을 때 상업광고가 없는 KBS 클래식FM 폐지 가능성에 대한 소문도 돌았지만, 이번 봄 개편에서 3개 프로그램 진행자가 교체되는 선에서 마무리됐습니다. 매일 아침 9시에 방송되는 '가정음악'의 진행자로는 신윤주 아나운서, 오전 11시 'KBS 음악실'에는 윤수영 아나운서, 낮 12시 '생생 클래식'에는 김진현 아나운서가 발탁됐습니다. 

다만 일부 애청자들은 첼리스트 송영훈이 진행했던 '가정음악'을 비롯해 피아니스트 김주영이 진행하던 'KBS 음악실' 등에서 전문 음악가들이 빠지고 아나운서로 대체된 것에 대해 "이전의 색을 구현할 수 있겠냐"라는 우려도 보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KBS 음악실'의 경우 DJ인 김주영이 피아니스트인만큼 오프닝 때 직접 연주를 하고, 많은 연주자들이 나와 라이브를 선보이며 전문 음악방송의 매력을 보여줬지만, 이젠 생생한 오프닝 연주는 들을 수 없게 됐습니다.

한 애청자는 "새로운 프로그램도 듣다 보면 익숙해지지만, KBS 클래식FM을 매일 듣는 청취자로서 이런 하차 소식은 더는 듣고 싶지 않다"라면서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청취자 역시 "개편에서 진행자 뿐 아니라 담당 연출자, 작가 등도 교체됐다고 한다"라며 "클래식의 경우 진행자와 제작진의 전문성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익숙해지기 전까진 어색함을 느낄 거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KBS 측은 "KBS 클래식FM 개편은 안정적이고 경쟁력 있는 채널 운영을 위해 일부 진행자를 교체한 것"이라며 "역량 있는 진행자들이 이끌어가는 국내 유일의 지상파 클래식 라디오 채널에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라고 당부했습니다. 

문제는 KBS 개편이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특히 연출의 경우 메인을 맡기까지 수련 기간도 길고, 하나의 프로그램이 탄생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베테랑들의 공백이 장기적으로 봤을 땐 KBS 프로그램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흘러나왔습니다. 

이번 퇴사자 중 기자, PD 등 방송 직군은 52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중 KBS 2TV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호평 받은 전쟁 장면을 도맡아 연출했던 김한솔 PD도 포함됐습니다. 김한솔 PD는 시사교양 PD로 2004년 입사해 2015년 KBS 1TV '임진왜란 1592'로 사극 연출에 도전해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연출상, 제44회 한국방송대상 대상, 뉴욕 TV&필름 페스티벌 작품상 금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성균관 스캔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열아홉 순정' 등의 작품을 연출한 황인혁 PD도 KBS를 떠납니다. 황인혁 PD 역시 탄탄한 연출 능력을 인정받으며 다수의 히트작을 선보인 만큼 "인력 유출"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 외에도 '난 네게 반했어', '매리는 외박중' 김영균 PD, '오 마이 금비' 안준용 PD, '태종 이방원' 심재현 PD, '연모', '현재는 아름다워' 이현석 PD 등도 퇴사했습니다. 

한 관계자는 "최근엔 메인 연출자로 데뷔하기까지 기간이 짧아지긴 했지만, 한 편의 프로그램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1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라며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갔고, 이번에도 인력들이 대거 이탈하는 건 타격이 될 수 밖에 없다"라고 전했습니다.

방송가의 위기가 커지면서 이른바 ‘장수 프로그램’들도 변화의 칼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장기간 방송하며 방송사의 상징으로 꼽혀온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와 KBS 1TV ‘전국노래자랑’,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등이 일제히 MC와 DJ 교체 등 재정비에 돌입하면서 시청자 사이에서 엇갈린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26년째 시청자를 만난 ‘세상에 이런 일이’는 5월 방송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프로그램이 쉬어가는 것은 1998년 5월 첫 방송한 이후 처음입니다. SBS 측은 “폐지가 아닌 새로운 경쟁력 확보를 위해 휴지기를 갖는 것이다. 7월 파리 올림픽 이후 다시 돌아올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방송을 재개하더라도 이전 모습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시선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앞서 1월 방송사가 “경쟁력이 없다”라며 프로그램 폐지를 논의한 지 2개월여 만에 장기 휴식을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첫 회부터 출연한 방송인 임성훈, 박소현 등을 비롯해 일부 진행자들이 바뀔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17일 한 방송국 관계자는 “제작진이 MC 교체를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두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44년째 방송 중인 KBS 1TV ‘전국노래자랑’도 개그우먼 김신영을 새로운 MC로 내세운 지 1년 6개월여 만인 12일 방송인 남희석으로 진행자로 교체해 큰 분노와 충격을 줬습니다. 이와 함께 SBS 파워FM(수도권 기준 FM 107.7㎒) ‘아름다운 이 아침’은 청취자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2000년 10월부터 23년간 DJ 자리를 지켜온 가수 김창완이 14일 마지막 생방송의 완성의 따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물러났습니다. 후임으로는 배우 봉태규가 18일부터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방송국 관계자들은 이미 고정 시청자를 확보한 장수 프로그램들마저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개편되는 현실이 방송가의 위기를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 PD는 “방송사들이 최근 재정난이 심각해지면서 프로그램 제작을 최소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각 프로그램이 지닌 의미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시청률로만 프로그램 존폐를 결정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방송사들이 프로그램 편수를 급속도로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화제성조사회사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은 현재 방송 중인 프로그램들을 집계한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TV 채널의 시사 교양, 예능, 다큐멘터리 등 비드라마 콘텐츠 신작은 총 272편으로 2022년 349건에 비해 22.1% 감소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억지설정과 무리한 전개를 거듭하면 '막장 드라마'가 됩니다. 과장된 캐릭터, 비약과 궤변, 황당한 결말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개연성 없는 막장 드라마'라며 손가락질합니다. 자극적이고 퇴폐적인 막장 드라마의 단 하나 장점을 꼽는다면 그래도 결말은 권선징악이란 점입니다.

그런데 2024년 현재, 서울시 목동 방송회관에서 매주 라이브로 펼쳐지는 장면들은 그 단 하나의 장점조차 갖추지 못했습니다.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구성된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이하 선방위)는 1997년 선방위가 법정기구로 제도화된 이후 가장 역대급 막장 드라마가 아닐까 싶을 만큼 그 내용이 파격적이고 황당무계합니다. '개연성 없는 막장 드라마'는 욕하고 채널을 돌릴 수라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이 '선방위 시리즈'는 우리 앞에 엄존하는 현실입니다. 채널을 돌릴 수도 없습니다. 이런 초현실적인 파행이 어디까지 계속될지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 막장 드라마 뺨치는 선방위 파행 ★

이번 선방위는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예비후보자 등록 신청 개시 전날인 2023년 12월 11일 출범해 선거일 30일 뒤인 2024년 5월 10일까지 6개월간 운영됩니다. 선방위가 법정기구로 처음 제도화된 것은 1997년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에 8조2항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 관한 조항이 신설된 때부터입니다.

이후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은 '공직선거법'으로 명칭이 바뀌고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도 몇 차례 개정되었으나 설치 목적은 1997년 이후 지금까지 자구수정 없이 동일합니다.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위하여' 운영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선방위가 이번 총선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해치는 최고 '빌런'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3월 14일까지 선방위가 10차례 회의를 여는 동안 법정제재 건수가 벌써 12건입니다. 앞으로 5월까지 활동기한이 더 남은 점을 감안하면 역대 최다 법정제재 건수를 기록하는 선방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법정제재를 받으면 방송사 재허가, 재승인 심사 때 감점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최악의 경우 방송사가 문을 닫거나 팔려나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중징계 건수뿐만 아니라 징계대상의 편파성과 집중성에 있어서도 가히 최고 기록이라 할 만합니다. 지금까지 MBC 표준FM <신장식의 뉴스 하이킥>에만 법정제재가 7건, YTN 뉴스FM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2건이 내려졌고, CBS 표준FM <박재홍의 한판승부>·MBC 표준FM <김종배의 시선집중>·울산 MBC TV <MBC 뉴스데스크 울산>이 각 1건씩입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는 지난 15일 성명을 통해 "2008년 이후 선방위가 '관계자 징계'를 내린 것은 단 두 차례에 불과했지만, 이번 선방위는 출범한 지 채 석 달도 되지 않았음에도 MBC에만 '관계자 징계'를 다섯 차례나 내린 것"이라며 "선방위 등의 벌점 테러는 MBC를 무너뜨리려는 정권 차원의 계산된 움직임이며, 살고 싶으면 입 다물고 권력에 충성하라는 공개 협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미세먼지 농도 1, 이태원참사특별법 모두 제재 ★

실제로 선방위는 3월 14일 MBC TV <MBC 뉴스데스크>가 일기예보를 하면서 미세먼지 농도 1을 파란색 숫자로 그래픽 처리한 것이 특정 정당을 위한 불법선거운동이라며 법정제재를 전제로 한 의견진술을 의결했습니다. 해당 안건이 상정될 때부터 '황당한 코미디 같다!?'라며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판정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의견조차 가볍게 무시했습니다. 공정선거를 위해 운영되는 선방위가 중앙선관위조차 패싱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는 말은 과연 무엇일까요?

급기야 선방위는 법적으로 규정된 권한 범위를 무한대로 확장하고 자의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경지까지 이르렀습니다. 정부여당에 조금이라도 불리하다 싶으면 그것이 선거와 관련된 보도든 아니든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며 제재대상으로 삼습니다. 3월 7일에는 이태원참사특별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을 비판적 논조로 다뤘다는 이유로 cpbc 가톨릭평화방송 프로그램에 법정제재 전 단계인 의견진술을 결정했습니다.

1월 30일에 방송된 cpbc 가톨릭평화방송 FM <김혜영의 뉴스공감>에서 진행자가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만 떠밀리듯이 재판에 넘겨진 상황이고 아무도 책임을 진 사람은 없는 상태"라고 말하고, 김준일 평론가가 "정치적 책임을 아무도 지지 않은 것에 대해 국민들이나 유가족들이 분노하는 것 같다"라고 했는데 이런 발언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선방위 권재홍 위원(공정언론국민연대 추천)은 "이태원참사로 23명이 기소되고 6명이 구속되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사법 조치를 받지 않은 것처럼 끌고 나간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며 분개했고, 최철호 위원(국민의힘 추천)은 해당 방송이 '정치적 목적'의 '가짜뉴스, 왜곡뉴스'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혐의 처분되고, 윤희근 경찰청장은 입건 전 내사 종결로 처리되고 잠시 구속되었던 박희영 용산구청장마저 보석으로 나와 여전히 구청장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박희영 구청장에 관해 검색해 보니 가장 최근 뉴스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용산구청에서 운영하는 <청렴 라디오> 첫 방송에 일일 DJ로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라며 그의 활짝 웃는 얼굴이 담긴 기사입니다.

이태원참사의 진짜 책임자들과 윗선은 거의 다 빠져나가고 일선 실무 부서장급만 재판받는 게 문제라는 점을 언론이 지적했는데 대체 무엇이 가짜이고 왜곡일까요? 아니면 선거가 끝날 때까지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무슨 잘못을 하든 눈 감고 입 막고 좋은 말만 골라 하는 게 공정한 방송일까요?

★ 친정부언론은 심의에서 열외 ★

선방위의 심의 기준과 잣대는 시민의 상식으론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만큼 편향적입니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불리하다 싶으면 선거와 관련된 방송인지 아닌지 따지지 않고 전천후로 응징을 가하면서, 정부 여당에 옹호적인 방송에 대해선 관대하기 짝이 없습니다. 물론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뇌물수수 의혹을 '외국 회사의 조그마한 백'으로 인한 해프닝 정도로 애써 축소하며 대통령 홍보방송을 내보낸 KBS 대통령 대담에 대해 선방위는 안건으로 다루지도 않았습니다.

TV조선 <시사쇼 정치다>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국민의힘 유세현장을 3월 7일과 8일에 생중계했고, 진행자는 "시장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한동훈 위원장에게 환호를 보내주면서 굉장히 분위기 좋은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라고 코멘트했습니다. TV조선은 다른 정당의 유세현장을 생중계로 보도한 적이 없습니다.(관련기사 : 자녀 돌보는 사진까지... 종편의 도넘는 '한동훈 띄우기' https://omn.kr/27to7) 한 눈에 보이는 이런 공정성과 형평성의 문제에 대해 선방위는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부 종편방송은 철저하다. (MBC, CBS와 달리) 패널 구성에 엄격하다"(최철호 위원)라며 대놓고 두둔하는 발언까지 내놨습니다.

채널A <뉴스 TOP 10>도 3월 5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청주 유세 소식을 전하며, 한동훈의 어린 시절 사진을 게재하고 '본이 청주, 청주 한씨'라고 소개하는 등 낯뜨거운 홍보성 방송을 내보냈지만 선방위의 제재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대해 '조선제일검 한동훈', '한동훈의 시간'과 같은 자막을 올리며 반복적으로 국민의힘 편향적인 방송을 해 온 채널A에 대해 민원이 제기되었지만, 선방위는 '여권 출연자와 야권 출연자 비율을 잘 맞췄다'라며 문제없다는 의견으로 마무리한 바 있습니다.

★ 막장 드라마의 결말은? ★

휘어진 거울로 세상을 보면 모든 사물이 왜곡됩니다. 굽은 것은 곧은 것으로, 곧은 것은 굽은 것으로 비칩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류희림 위원장(대통령 추천)과 황성욱 상임위원(국민의힘 추천) 2인의 합의만으로 위원을 인선하고, 야권추천 위원들이 퇴장한 채 여권추천 위원 4명의 의결로 결정된 선방위는 그 태동부터 휘어진 거울로 만들어진 채 출범했습니다.

과거 권언유착과 노조탄압에 앞장섰다가 해임된 언론인이거나 권력 친화적 강경보수로 이름난 인사들이 대부분인 선방위가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위해' 작동할 것이라고 기대하진 않았습니다. 그렇다 해도 역대 최고기록을 갈아치울 만큼 중징계를 자의적으로 남발하는 행태는 지금껏 없었던 일입니다. 총선 D-Day가 다가올수록 선방위의 정권 보위를 위한 표적심사와 벌점테러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달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막장 드라마의 끝장입니다.

이런 부조리를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유신시대, 막걸리보안법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국가에 의한 방송심의 자체를 폐지하자는 강경론부터, 정치적 공정성에 대해서는 법정 제재가 아닌 행정지도만 가능하게 하자는 온건론까지 정책 대안을 두고 시민사회와 언론계, 학계에서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충분한 숙의과정을 통해 대안을 만들어야 하고 이번 선방위가 내린 위헌적이고 몰상식한 결정을 전면 취소하는 한편 부당한 권력남용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와 같은 선방위의 파행을 막기 위해 22대 국회는 새로운 대안을 내놔야 할 것입니다. 진영을 넘어서서 민주주의를 복원하기 위한 시민들의 지혜와 언론인들의 용기가 절실한 때입니다.

"드라마는 최종회 나올 때까지 묵혀놨다가 완결되면 한 번에 정주행해요."

취업준비생 강민우 씨(29)씨는 "마지막으로 TV 프로그램 본방송 시간을 맞춰 본 게 3년 전"이라며 이 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요즘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로 보기 때문에 굳이 방송 시간에 맞춰 TV 볼 필요를 못 느낀다"라고 했습니다.

대학생 이연우 씨(24)도 "최근에 드라마를 본방으로 챙겨본 적이 없는 것 같다"라며 "OTT를 몇 개 구독하고 있어서 시간 맞춰 보지 않아도 된다. OTT에서 자체 제작하는 오리지널 시리즈가 더 재미있고 퀄리티(품질)도 좋아서 TV 방송은 거의 보지 않게 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 OTT 강세에 케이블 TV·IPTV "어쩌나" ★

OTT 이용률이 증가하면서 케이블과 유료방송 업계가 한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지상파 방송국과 케이블TV에서도 본방송 편성 드라마 수를 줄이는 추세입니다.

19일 방송통신위원회 '2023년도 방송시장경쟁상황평가 결과 발표'에 따르면 2023년 OTT 이용률은 77%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2020년 66.3%였던 이용률은 4년 만에 10%포인트 이상 늘었습니다. 반면 2022년 말 기준 전체 유료방송 서비스(인터넷 TV·케이블 TV 포함) 가입자 수는 전년 대비 1.5%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에 대해 IPTV 업계 관계자는 "IPTV에 OTT 서비스를 넣는 게 필수가 된 분위기입니다. 사용자들이 최대한 많은 OTT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제휴 업체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추세"라며 "신규 가입자 유치보다는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새로운 서비스 소개 등 기존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한 전략을 짜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업계에서는 방송시장 성장이 둔화하는 가운데 유료방송 가입자 수 증가 폭도 쪼그라들거나 감소세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지난해 이동통신 전문 조사기관 컨슈머인사이트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케이블TV·IPTV 등 유료방송 이용자의 37%가 코드 커팅(유료방송 해지 및 OTT 가입)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 중 4%가 '해지할 계획', 33%는 '고민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 TV 편성 드라마 이제 8개뿐 ★

방송국들은 양보다는 높은 제작비를 투자해 질로 승부하는 시대에 들어서자 수익성이 적은 사업부터 정리에 들어갔습니다. 

소위 드라마 '본방 사수(본방송 송출 시간에 시청하는 것)'도 이제는 구시대 문화가 됐습니다. 과거 각 방송국에서는 월화, 수목, 주말 드라마 등으로 매주 3개씩 방영했으나 최근엔 1~2개만 방영하거나 아예 방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지상파 방송국과 케이블TV 방송을 통째로 편성된 드라마는 총 8개에 불과합니다. 요일별로 월화 드라마 2개(KBS 2TV·tvN), 금토 드라마 2개(MBC·SBS), 주말 드라마 1개(tvN)에 일일 드라마 3개(KBS 1TV·KBS 2TV·MBC)에 그쳤습니다. 종합편성채널인 JTBC와 TV조선은 방영 중인 드라마가 없습니다.

광고 시장 규모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작품이 흥행하더라도 광고 수익으로 제작비를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2022년 전체 광고 시장에서 방송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20.6%로 전년 대비 2.1% 감소했고 규모도 2조 8940억원으로 전년 대비 3.2%(2조 9910억원) 줄어드는 등 감소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전반적으로 제작 드라마 편수가 줄어든게 근본적 원인이다. 방송국 드라마 제작의 투자 대비 성공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방송국은 드라마 제작비가 올라가고 시청률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광고도 디지털 플랫폼과 콘텐츠에 뺏기고 있어 앞으로 방송 편성 드라마 수는 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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